한 해를 돌아보면 마음이 절로 남루해진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의 기억들이 낡은 넝마에 담긴 잡동사니처럼 옹색하고 옹졸하게 여겨진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여유 없이 살았나, 무엇을 위해 그렇게 아등바등 살았나.
돌아보는 매순간이 부끄러움의 연속이다. 무엇 하나 번듯하게 잘했다고 되새겨지는 일이 없다.
잘못도 한두 번이고 실패에도 횟수가 있는 법이거늘,
새해가 될 때마다 되새겨지는 이런 자괴감을 어찌 달래야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면 지난 한 해에 대한 자괴감이 종적을 감춰버린다.
자괴감이 들어차 있던 자리에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감이 충만해진다.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새로운 계획을 만들고, 새로운 일정을 잡는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새해가 오지 않고 영원히 과거의 자괴감에만 사로잡혀 살아야 한다면 지옥이 따로 없을 것이다.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바로 이곳이 지옥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제와 오늘의 구분이 있다는 것,
지난 해와 새 해의 구분이 있다는 건 인간에게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이 있으므로 영원히 실패한 인생도 없고 영원히 성공한 인생도 없는 것 아닌가.
새 해가 되면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계획을 세운다. 외형상으로는 저마다 다른 것 같지만 본질을 들여다 보면 모두 한 가지 계획에 몰두해 있다.
지난해보다는 잘 살아야지, 하는 것이다.
상향된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나름대로 각오를 다진다.
돈을 더 벌겠다는 사람, 지위를 더 높이겠다는 사람, 더 많은 명예를 얻겠다는 사람….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다시 일 년이 지나고 연말이 되면 우리는 또다시 깊은 자괴감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새해가 시작되면 지난 해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일에 또다시 몰두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고, 그런 일들이 해마다 반복된다는 걸 슬그머니 깨닫게 될 즈음이면 아차차,
우리 얼굴에 어느덧 주름이 늘어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다가오는 새 해에는 돈과 명예와 권력 따위에 오염된 판에 박힌 듯한 포부를 가차없이 벗어던지고, 떠오르는 태양처럼 신선하고 창조적인 계획을 한 가지씩 세웠으면 좋겠다.
인생은 시간의 여정이 아니라 마음의 여로이다.
하지만 시간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채 우리는 자신을 교정할 마음의 여유를 잃고 세상을 살아간다.
그것을 반영하듯 이제 세상에서는 ‘정신적인 가치’라는 말이 별로 쓰이지 않는다. 요컨대 대한민국은 지금 진정한 자아를 잃어버리고 표류하는 위태로운 선박과 다름없다.
잃어버린 자아를 되찾기 위해서는 물질에 대한 집착과 마취에서 깨어나 정신적인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위기를 자각하고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 나서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아파트 광풍, 정치 광풍, 교육 광풍에 치여 희망 없는 시간의 노예가 되어 ‘밀운불우(密雲不雨)’의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모른다.
세상을 가득 뒤덮은 먹구름, 우리가 삶의 가치를 회복하지 않는 한 좀체 걷히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마음의 고향, 잃어버린 마음의 친구, 잃어버린 마음의 가치는 모두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