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그릇 싸움’이란 말이 어디서 유래했는지 모르겠다. 강아지들이 서로 먹겠다며 한 밥그릇에 주둥이를 들이밀며 다투는 것은 흔한 모습이다.
지적 동물인 사람이 밥그릇 때문에 싸우는 것은 격에 맞지 않는다. 그런데 한 해를 되돌아보면 온통 ‘밥그릇 싸움’이자, 있는 것도 모자라 더 먹겠다고 달려드는 ‘탐욕’ 투성이었다.
영장기각을 둘러싼 법원과 검찰의 갈등(사법개혁 주도권 다툼)을 비롯해 사학법 개정에 반대하는 종교단체(학교 운영권 지키기),
선물거래소 낙하산 논란(정치권 386 실세 측근의 감사후보 추천), 의사들의 연말정산 관련서류 제출거부(소득내역 공개에 따른 세 부담 증가 우려) 등이 대표적이다.
한 쪽에서는 매도하지 말라고 할 게 분명하다. 법을 다루는 이들은 국민을 위한 것이라 하고, 종교단체는 학생들을 위한 신념이라고 주장한다. 386 실세들도 적합한 전문가를 추천했음을 강변 할테고, 의사들은 환자의 비밀보호를 내세운다.
나름의 명분을 갖추고 있으니 일견 수긍할 만한 대목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제3자의 눈에는 염치없고 치졸한 밥그릇 싸움으로 비치고 있으니 어찌하겠는가.
많이 배웠고, 사회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이 보이는 집단 이기주의 행태들이다. 시쳇말로 조폭들의 밥그릇 싸움인 ‘영역 다툼’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우리 민족은 도덕과 예의를 중시해 왔다. 상대방을 배려치 않고 자기 이익만을 위해 달려드는 것을 비도덕이라고 했고, 수치로 여겼다.
하지만 이제는 부끄러워 하기는 커녕 당당하게 자기의 이익만을 주장한다. 집단 이기주의는 80년대 이후 급격하게 진행된 민주화의 부산물로 평가된다.
권위주의 시대에 억눌렸던 것이 민주사회로 가면서 표출되는 것이다. 특히 ‘참여’를 앞세운 노무현 정부 들어 각 이해집단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각 집단이 벌이는 밥그릇 싸움을 풀어갈 마땅한 해결책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이익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타협을 위해서는 한 발 물러서는 관용이 필요하지만 ‘네가 먼저’를 외치며 으르렁거릴 뿐이다.
과거에는 사회 공동의 규범을 통해 해결책을 찾았고, 종교가 나서서 중재역할을 맡기도 했다. 그래도 풀지 못할 때는 공권력이 동원돼 평정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정부도, 법을 적용하고 집행하는 판·검사도,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도, 신을 섬기는 종교인도 밥그릇 싸움에 가세하는 형국이다. 물론 일부에 해당하는 얘기겠지만 도대체 어떻게 갈등을 풀어가야 할지 난감하다.
수 일전 개신교와 천주교, 불교, 원불교 등 각 종교계에서 성탄메시지를 발표했다.
메시지에는 공통적으로 ‘나눔’ ‘용서’ ‘화해’ ‘사랑’ ‘평화’와 같은 ‘좋은 말’이 가득했다. 그런 말 대로라면 이 땅에서 밥그릇 싸움 따위의, 개들에게나 줘야 할 저급한 다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가 인류에게 했던 당부는 2,000년 넘게 되풀이되며 여전히 미완성 상태로 남아 있다. 오히려 더 빼앗고, 복수하고, 다투며, 증오하고, 전쟁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 현세의 모습이다.
올해는 개의 해(丙戌年)였으니 개처럼 밥그릇 싸움이 많았다고 치자. 다가오는 돼지 해(丁亥年)에는 추한 밥그릇 싸움이 그치길 바란다면 지나치게 감상적인 생각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