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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사법개혁이 시대의 우리 시대의 강력한 화두로 떠올라 있다. 사법개혁에 대한 간절한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그 역사가 오래이지만, 요즘처럼 전면적으로 대두된 일은 거의 없었다. 특히 대법원이 사법개혁의 필요성을 스스로 자인하고 앞서 사법개혁안을 제시한 것은, 권위주의 군사정권 시대의 대법원을 회고해 본다면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대법원이 개혁에 나선 과정을 보면 반드시 스스로 개혁을 이끈 것은 아니었다. 즉, 대법원은 1993년 사법파동을 겪으면서 내 쫒기 듯이 사법개혁에 나섰기 때문이다. 당시 문제가 된 것은 2003년 서성 대법관의 후임으로 신임 대법관을 임명하는 과정에서 구태를 반복하려는 대법원의 행태에 대해 많은 판사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일부 판사는 사직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었다. 이 때 무려 160여 명의 판사들이 대법원장의 재고를 촉구하는 사직서를 제출하였다. 이러한 사법파동을 겪으면서 대법원장은 사법개혁추진기구를 발족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기구가 ‘사법개혁위원회’(이른바 사개위)이다.
사개위는 2003년 10월에 발족한 이래 1년간의 작업을 거쳐 2004년 10월에 ‘사법개혁을 위한 건의문’(이하 사개위안)이라는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보고서의 편제는, 제1장 대법원의 기능과 구성, 제2장 법조일원화, 제3장 법조인양성과 선발, 제4장 사법참여, 제5장 사법서비스 및 형사사법제도로 구성되어 있다. 사개위안에는 많은 새로운 내용들을 담고 있었다. 고등법원 상고부의 도입, 법조일원화의 확대, 법학전문대학원(이른바 로스쿨)의 도입, 배심제 재판제도의 도입, 사법서비스의 제고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사개위안이 많은 언론을 통해 국민들에게 전달되면서, 사법개혁은 이제 기정사실이 되고 또 많은 국민은 이번의 사법개혁에 적지 않은 기대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개위안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는 사람들이 강력하게 대두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개위가 구성될 때부터 사개위의 개혁안에 대해 반신반의했던 사람도 적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개위를 구성하는 위원들의 면면을 보면, 사개위는 거의 전적으로 대법원의 주도하에 진행되면, 법조인의 이익을 과도하게 반영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려는 사개위안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사개위안의 가장 중대한 결함은 사개위안이 사법개혁에서 정작 중요한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즉 사개위안은 기본적으로 기존의 사법체제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판사 및 검사에 대한 관료주의적 통제구조를 유지하는 안이고, 법조3륜의 권위주의적이고, 특권주의적 풍토를 유지하는 안이었다. 이렇게 된다면 사개위안이 그대로 실천된다고 하더라도 피상적인 개혁에 그치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점들이 드러나면서 사개위안에 대한 국민적인 비판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이때가 대체로 2004년 11월 12월 경이다.
사개위안의 문제점은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이름바 사개추위)의 활동이 시작되면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사개추위는 사개위가 해산한 후 2005년 1월 사개위 안을 제도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통령직속기구이다. 사개추위는 사개위안을 기반으로 해서 그것을 법안으로 만드는 작업을 수행했다. 그런데 사개추위는 단순히 사개위안을 법안화하는 작업에 자신의 역할을 한정함으로써 사개위안에 대한 개선에 대해서는 매우 소극적이었다. 심지어 사개추위는 법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사개위의 안을 개악하기도 했다. 이 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형사소송법과 관련하여 조서의 증거능력을 오히려 현행보다 더 넓게 인정한 것이었다. 사개추위는 만들어진 법안을 정부에 회부하기에 앞서 공청회를 개최하기도 했는데, 방청석에는 발언의 기회조차 부여하지 않았는 등 국민의 의사를 전적으로 무시하고 오로지 사개위의 안을 고수하였다.
국민적인 열망을 배경으로 한 사법개혁이 이처럼 왜곡되고 위축되는 상황에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시민들의 움직임이 점차 거칠어졌으며, 그러한 움직임의 연상선에서 만들어진 조직이 ‘민주적 사법개혁과 변호사 3000명배출을 위한 국민연대’(약칭 민주사법3000국민연대)이다. 민주사법3000국민연대는 법조특권의 파괴야 말로 사법개혁이 출발이며 가장 중요한 교두보라는 인식하에 변호사수의 획기적인 증대를 기치로 내걸고, 2005년 5월 12일에 출범하였다. 출범 당시에는 공무원노조를 위시한 민중연대, 교수노조,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등 학술단체, 학생회 등이 중심이 되었다. 민주사법3000국민연대는 사개위안 및 사개추위의 법안을 강력히 비판하면서, 법조특권의 파괴를 요구하고, 더욱 철저한 사법개혁의 실시를 주장했다.
그러던 중 사법개혁의 의제중 변호사수의 증대가 갖는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사법개혁의 의제를 더욱 확대하여 전국민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어, 지난 6월 민주사법3000국민연대는 ‘민주적 사법개혁 실현을 위한 국민연대’(약칭 민주사법국민연대)로 명칭을 고치고, 현재 진행중인 사법개혁의 모든 문제에 대해 국민의 의견을 게진하는 것으로 하고, 아울러 사법개혁과 관련한 더 많은 시민단체를 결합하여 조직확대를 도모하였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여러 인권단체, 네티즌 단체들이 추가적으로 민주사법국민연대에 가입하였다.
이처럼 연대조직의 규모가 커지고 조직의 목표도 더욱 포괄적이 됨에 따라 조직의 공동목표를 천명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민주사법국민연대는 사법개혁을 바라는 국민의 열망을 제대로 반영한 ‘민주적 사법개혁 국민안’(이하 국민안)을 만들기로 합의하고, 여러달에 걸쳐서 작업을 수행했다.
국민안의 초안은 지난 6-7월 사이에 몇몇 교수가 중심이 되어 작성하였다. 이 초안을 출발점으로 하여 국민연대 소속 단체 대표들이 수차례 회동하여 한 달 여 동안 논의하고 검토하면서 안을 다듬었다. 논의과정에서는 단순히 문안을 다듬는 것을 넘어, 체제가 변화하고, 여러 조항이 추가 삭제되고, 전문이 추가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국민안은 초안과는 질적으로 다른 독자적인 국민안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 국민안은 9월 15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통해서 국민들에게 선포되었다.
오늘 우리가 제시하는 이 작은 책자는 이 국민안에 대한 해설서이다. 사법개혁과 관련한 국회일정이 매우 긴박하게 진행되고 있어서, 사법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입장을 제대로 정리하여 제시하는 일도 그에 걸맞게 빠른 속도로 진행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날림으로 진행된 것은 아니다. 이 조그만 해설서의 초안작성을 위해서도 10여명 이상의 전문적인 학자, 활동가들이 참여했으며, 수합된 원고를 전체적으로 조율하고 각 단체들에게 회람하여 명실상부하게 국민안에 대한 공식해설서가 될 수 있도록 하였다.
현재 언론 등을 통해서 사법개혁이란 말이 난무하고 있지만, 실상 사법개혁이란 말이 포괄하는 사안들이 너무나 많고, 사법개혁에 대한 견해도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정작 무엇인 긴요한 것인지에 알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 해설서는 바로 그러한 부분을 해소하고자 한다. 이 해설서는 사법개혁에 관심을 갖고자 하는 모든 국민들에게 사법개혁의 실질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해설한다. 이 해설서는 가급적 널리 읽혀지도록 하기 위해 알기 쉽게 서술하려고 애썼지만, 단순히 자극적인 내용을 나열하기 보다는 한국사회의 미래를 걱정하고 차분히 사법개혁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들도 염두에 두었다. 그래서 이 책은 다분히 선동적이라기보다는 논리적이다.
이제 민주사법국민연대는 ‘민주사법국민안’을 민주적으로 만들어 선포한 개가에 이어, 그 해설서를 내는 성과를 내었다. 얼핏 이런 일이 단순히 몇 쪽짜리 문건을 생산한 것에 그치는 것으로 보일 수는 있겠지만, 결코 그렇게 폄하될 성질의 것은 아니다. 우리는 국민안과 그 해설서를 국민들에게 전달하면서, 우리나라 사법개혁과정에서 결코 지울 수 없는 중대한 일을 했다고 자부한다. 이 문건은 고도로 진취적이고 진보적인 내용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우리나라 사법개혁운동 활동가들의 의사를 실질적으로 반영한 것이어서, 결코 사라질 수 없는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 이 문건은 민주사법국민연대를 포함하여 사법개혁을 이루려는 모든 시민, 학생, 활동가, 국회의원, 기자들에게 활동의 지침이 될 것이며, 이후 진행되는 모든 사법개혁의 성취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2005. 11.
민주적 사법개혁실현을 위한 국민연대
[전문] 일제강점기 동안 조선민중의 탄압에 앞장섰던 사법부가 8.15해방 후 반성과 청산 없이 우리의 사법부를 계속 지배해왔다. 독재정권과 군사정권 하에서 사법부는 권력에 굴복하거나 영합하면서 권력의 앞잡이 역할을 계속했다. 심지어 최근에 진행된 사회의 전반적인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사법부의 특권주의적·권위주의적 행태에는 조금도 변화가 없다.
사법은 총체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것도 급변하는 세상질서에 걸맞게 시급히 개혁되어야 한다. 사법을 바로 세우는 일은 바로 이 나라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사법을 바로 세우지 않고는 결코 인권선진국이 될 수 없고 경제선진국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민은 당당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사법서비스를 원한다.
사법을 바로 세우는 과정에서 사법부의 철저한 자기반성과 과거청산작업은 필수적이다. 이 과정이 제대로 수행되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과거의 망령에서 벗어나 철저한 사법개혁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미래지향적 사법에서는 국민주권이 실질적으로 구현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국민이 직접 사법과정에 참여하여야 한다. 국민은 재판과정에서뿐만 아니라 사법부 전반의 구성과 운영에도 참여하고 영향을 미칠 수 있기를 원한다. 이렇게 되어야만 사법기관이 더 이상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하수인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인권수호기관으로 정립될 것이고, 더 이상 국민위에 군림하는 사법기관이 아니라 국민에게 봉사하는 사법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우리는 사법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굳건한 사명감으로 무장하고 민주적 사법개혁국민안을 선포함과 동시에 이를 구현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할 것임을 천명한다.
2005. 9. 15.
민주적 사법개혁실현을 위한 국민연대
제1조 사법과거사청산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 ① 사법부의 철저한 자기반성과 과거청산을 통하여 미래지향적 사법개혁을 달성하기 위하여 사법과거사청산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
② 사법과거사청산위원회는 비법조인이 법조인과 대등한 비율로 참여해야 한다.
사법부의 철저한 자기반성은 개혁의 출발점 사법부의 과거는 현재의 사법부를 규정하고 있다. 과거 사법부의 관행, 제도, 결정은 깊게 뿌리내리고 현재의 사법부의 관행, 제도, 결정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사법부는 독재 권력의 시녀로서 주요 시국사건에서 사법권의 독립을 지켜내지 못한 것은 물론이려니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몇 차례 쇄신노력을 무참하게 짓밟은 권력 노릇에 충실했을 뿐이다. 국민 위에 군림해 온 사법부 그리고 국민의 인권을 지켜내지 못한 사법부의 역사를 극복하는 일은 사법개혁의 출발점이다.
이를 위해 수많은 인권유린을 방조하거나 실질적으로 동조한 사건들에 대한 진상이 낱낱이 드러나야 한다. 5·18민주화운동, 거창양민학살, 제주4·3사건, 의문사, 친일행위, 삼청교육대, 민간인학살 등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에 의해서 자행된 인권유린의 진상을 규명하고 그 피해자들에 대한 명예회복 조치를 취하기 위한 법적 근거가 속속 마련되고 있다. 또한 국가정보원 및 경찰 등 국가기관들도 스스로 자신들이 관여했던 사건들에 대해서 반성하고 진실을 규명할 위원회를 설치·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유독 법원과 검찰만은 이러한 시대적인 요청에 부응하지 않고 있다.
사법부가 확정 판결을 빌미 삼아 자기반성을 하지 않는 것은 사법부가 여전히 국민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진실은 하나일 수밖에 없다. 그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법부 스스로가 적극 나서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사법부가 과거 독재정권에 아부하거나 독재권력의 전횡을 묵인함으로써 국민들의 민주주의 열망과 민주적인 발전을 가로 막았다는 사실을 우리 국민은 모두 알고 있다. 사법개혁은 그러한 어두운 과거를 드러내고 반성하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 국민안은 이 일을 수행할 기구로서 (가칭)사법과거사청산위원회의 설치를 주장한다.
사법과거사청산위원회(가칭)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사법과거사를 청산하는 일은 일단계로 사법부가 스스로 풀어야 한다. 대법원장 직속으로 (가칭)사법과거사청산위원회를 설치하고 이 기구에 모든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위원회의 구성원은 사법부 소속이 아닌 일반 법조계 인사와 비 법조계인사를 혼합하여 10인 내외로 하는 수준이면 적절할 것이고, 주로 조사활동을 벌이게 될 것이다. 조사활동에는 대상(예정)사건을 검토하고 판결 자체뿐만 아니라 판결을 둘러싼 정치적인 의혹도 조사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서 당시 법률의 문제가 무엇이었으며, 또 당시 정치판사가 누구였는지가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다. 대법원 행정처는 사무를 보조하는데 그쳐야 하며, 조사인력은 민간 전문가가 맡아야 할 것이다.
제2조 사법과거사 청산은 철저하고 실질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① 국민으로부터 정당한 절차를 거쳐 수임받지 못한 국가기구나 헌정질서를 파괴하여 초헌법적으로 설치된 국가기구에서 제정된 법령, 유신정권 하의 긴급조치 포고령 및 이러한 법령에 기한 판결에 대하여는 그 정당성을 철저하게 심사하고, 반인권적 사법판결에 대해서는 이를 무효화하는 조치가 수반되어야 한다.
② 사법과거사청산위원회를 비롯하여 법률로 설치한 모든 과거청산위원회에서 결정 또는 인용된 사법판결사건에 대해서는 재심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③ 사법피해자에 대한 보상과 명예회복이 이루어져야 한다.
초법적인 반인권·반민주 법률에 근거한 판결을 무효가 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역사적으로 사법개혁에 대한 국민적인 공감대와 함께 과거에 잘못된 제도와 관행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분위기가 광범하게 형성되어 있다. 철저한 사법과거 청산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위배되는 법률을 근거로 판결한 모든 사건을 점검하고 부당하거나 반인권적인 사법부의 판결을 무효화해야 한다. 국민으로부터 정당한 지지를 받지 못한, 즉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으로 구성된 국회가 제정하거나 개정하지 않은 법률의 정당성을 재검토되어야 한다. 이른바 미 군정청이 제정한 각종 포고령, 5·16쿠데타 직후의 국가재건최고회의의 포고령 및 이른바 혁명재판소에서 판결한 사건, 이른바 유신 정권의 평시 비상계엄 포고령 그리고 이른바 신군부가 설치한 입법회의라는 초법적·반민주적인 ‘입법회의’가 제·개정한 법률의 정당성을 재검토해야 한다. 이러한 반민주적인 정권시기에 제대로 항거하지 못하여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지 못한 과거를 뼈저리게 반성해야 한다. 또 이런 파시즘적인 법률을 근거로 내린 부당한 판결에 대해서는 전면 무효화하는 과감한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독일이 과거 파시즘정권시절에 내린 모든 판결을 무효화하는 조치를 취한 것은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국가의 모든 과거청산 기구에서 결정된 사건은 신속히 재심해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사법과거사청산위원회가 심의·의결하여 사실이 조작·은폐·왜곡되었다고 인정되는 과거의 부당한 판결 즉 사법피해를 입은 사건은 모두 재심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제주4·3사건진상규명과희생자명예회복에관한법률’ 등의 활동의 결과와 지난 5월 국회를 통과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기본법’에 의해서 설치되는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인용된 사건들은 모두 재심되어야 한다. 경찰, 국가정보원(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과 국방부에 설치된 관련 위원회의 조사에 의해서 실체가 드러난 사건들에 대해서 법원은 당연히 그 실체를 인정하여 신속하게 재심하고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아야 한다.
사법피해자들에게 보상과 명예회복을 해야 한다. 법원은 과거 부당한 판결은 억울한 사법피해자들을 양산해 왔으며, 심지어는 사형을 선고함으로써 사법살인의 피해자들을 만들어 냈다. 재심을 통해서 그 실체가 드러난 사건의 사법 피해자와 그 유가족들에게 국가는 정당한 배상과 보상을 취해야 한다. 또 이들의 많은 경우는 이데올로기의 희생자였으며, 이들에 대한 명예회복이 이루어져야 한다. 명예회복은 국가 차원에서 국가의 불법행위 피해자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을 보존하고 이의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적절한 조치가 취해 져야 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이들의 고통을 기억하기 위해서 유가족들에게 교육, 복지의 혜택을 줄 수 있는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제3조 배심제를 도입하여야 한다. ① 유무죄의 판단은 국민의 건전한 상식에 기초해 이루어지도록 배심원의 독립적 권한을 보장해야 하며, 배심원단의 평의과정 및 평결에 법관의 참여는 배제되어야 한다.
② 평결은 만장일치제의 원칙이 지켜져야 하며, 평결에는 기속적인 효력을 부여해야 한다.
③ 배심원단이 무죄평결을 하는 경우에는 검사는 항소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④ 민사재판에서도 배심제를 도입해야 한다.
배심제 도입의 필요성 해방이후 우리나라에서 지속되어 온 사법조직의 폐쇄성으로 인한 사법의 관료주의화·권위주의화 되어왔다. 관료주의적·권위주의적 사법은 민주주의에 기초한 국민을 위한 사법이 아닌, 사법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사법을 가속화시켰고, 이는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공정성·객관성·투명성·보편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어 결국 사법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고조시키기에 이르렀다. 바로 이러한 배경 하에서 국민의 사법참여가 대두되었고, 이의 중심에 위치한 것이 미국형의 배심제이다.
배심제는 국가권력으로부터 시민의 권리를 수호하는 역할을 수행해왔다는 역사성과 모든 국민이 사법제도를 포함한 모든 국정의 주요결정에 평등하게 참석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정치이념과 어우러져 발전해온 사법제도이다. 이러한 정치적 이념을 근거로 일반국민이 직접 재판과정에 참여하여 일반상식과 경험 및 지식을 기초로 피고인의 유·무죄를 판단하도록 한 것이 바로 배심제이다. 배심제는 이를 통해 사법의 투명성·공정성·객관성·신뢰성·보편성을 확보하여 사법권의 남용을 견제함으로써 사법의 민주화를 실현하려는 제도이다. 우리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주의 그리고 국민의 보편적 참정권의 또 다른 제도화로서 사법권력의 민주적 정당성을 강화해주는 배심제는 국민의 사법참여의 전형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배심제의 도입은 국민주권주의와 사법개혁의 관점에서 그 필요성과 타당성을 확보한다고 하겠다.
부언하자면 배심제의 도입은 구두변론주의, 직접주의, 집중심리주의, 공개재판주의, 증거개시제도 등을 실현시켜 결국 형사사법에서의 피의자 또는 피고인의 권리보호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다.
민주적 사법개혁 국민안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다.
① 배심원의 업무는 사실판단인 유·무죄의 판단에 한정되어야 하고, 법률문제인 양형에는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사실인정절차와는 달리양형절차는 고도의 법률문제를 다루는 절차로서, 특히 양형자료는 피고인의 사생활과 관련된 인격적·사회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배심원에게 과도한 부담을 줌으로써 일반국민의 재판에의 적극적·능동적 참여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배심원의 평의과정과 평결에 법관의 참여를 배제하는 것은 배심원의 독립성을 보장함으로써 공정한 재판의 중요한 전제가 된다. 이러한 배심원의 자유로운 평의와 평결의 보장은 배심원 상호간의 민주적 의견교환과 차이점에 대한 이해를 통해 결론에 이르게 하는 제도적 장치이다.
② 배심원의 평결은 전원일치제이어야 한다. 이는 배심원들에게 충분한 토의를 거쳐 합의에 이르도록 자연스럽게 작용하며, 민주주의의 중요한 원칙인 다원주의와 소수의견의 존중을 실현할 수 있게 한다. 즉, 전원일치제의 평결은 다수에 의한 소수의 억압이나 무시보다는 다수에 의한 소수의 진지한 설득 또는 역으로 소수의 타당성에 의한 다수의 의견수정 등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진정한 민주적 토론을 촉진시킨다. 이를 통해 배심제에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절차적·실질적 정당성이 제공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평결은 기속력을 가져야 한다. 만일 배심원의 평결이 기속력을 가지지 못할 경우 이는 법관에 의해 번복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배심원이 재판과정에 의욕을 가지고 적극적·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없게 하고, 더 나아가 배심원의 평결에 대한 일반국민의 신뢰를 실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따라서 배심원의 평결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배심원의 평결이 전원일치제이어야 하고, 이러한 평결에 기속력을 부여해야 한다.
③ 이러한 맥락에서 접근한다면 배심원의 무죄평결은 확정성을 갖게 되어 이에 대한 상소가 허용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이와 달리 배심원의 유죄판결에 대해서는 피고인의 상소가 가능하다. 물론 이 경우에도 상소심에서 다투어지는 것은 배심원의 사실판단이 아니라 법률판단(예컨대 허용될 수 없는 증거를 채택한 경우, 법관이 법의 개념을 부적절하게 설시한 경우 등)에 한한다. 결국 배심원의 평결에는 판결내용의 최종성이 인정되어 상소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하겠다.
④ 그밖에도 배심원의 평결은 법정에서 구두로 공개되어야 한다. 이는 재판결과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다시 말해서 배심원 평결의 구두공개는 재판에 대한 투명성의 제고, 국민의 알권리 보장, 공판중심주의 및 구두변론주의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이하 ‘사개추위’라고 함)의 “국민의형사재판참여에관한법률(안)”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다.
사법개혁위원회가 2004년 12월 31일에 건의한 사법개혁의 종합적·체계적 추진을 위하여 2005년 1월 18일 대통령자문기구로 발족된 사개추위는 2005년 5월 16일에 “국민의형사재판참여에관한법률안”을 의결하였다.
① 동법률안은 국민의 재판참여제도에 대하여 배심제와 참심제를 혼용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국민의 형사재판참여와 관련한 동법률안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전문적 관료사법의 횡포와 권력남용으로 인해 사법에 대한 불신이 고조된 오늘날의 우리나라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범죄사실인정절차와 양형절차를 분리하여 전자는 배심원이 맡고 후자는 직업법관이 맡는 것을 전제로 하는 형사절차이분에 기초한 배심제는 관료독점의 형사사법을 국민사법으로 전환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국민의 사법참여제도라고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개추위가 배심제와 참심제의 혼용을 채택한 것은 제도의 복잡성 및 예기치 못한 문제들을 야기하며, 특히 일반국민에 대한 불신이 그 내면에 내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② 동법률안 제13조는 사건의 다양성·복잡성, 처리의 효율성 등을 고려하여 참여시민의 수를 법정형이 사형,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에 해당하는 대상사건의 경우에는 9인, 그 이외의 대상사건에 대하여는 7인으로 하고, 다만, 피고인이 공소사실의 주요부분을 인정하는 경우에는 5인으로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 경험, 다수의 안정성, 심도 있는 실질적인 논의, 참여시민의 편견에 따른 오판의 방지 등을 고려할 경우 참여시민의 수는 미국에서와 같이 12인 적합하며, 최소한 9인 이상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일 참여시민의 수가 적을 경우(9인 미만) 때때로 소수의견이 참여시민 전체에 영향을 미칠 개연성이 높아지고, 이로써 참여재판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평의과정에서의 심도 있는 민주적이고 실질적인 토론이 방해를 받을 위험성이 높아진다.
③ 동법률안 제5조는 고의로 사망의 결과를 야기한 범죄, 강도와 강간이 결합된 범죄, 강도 또는 강간에 치상·치사가 결합된 범죄,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상의 뇌물 등 부패범죄 등 특별법위반죄를 기준으로 개별적으로 대상범죄를 특정하고 있으며, 국민참여재판이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예외적인 경우에 법원이 국민참여재판에서 당해사건을 제외하는 결정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법원의 배제결정”).
국민참여재판이 적용되는 사건은 피고인의 선택의사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상당수 걸러질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사개추위의 동법률안에서와 같이 추상적인 이유(동법률안 제9조 제1항 제3호)로 피고인이 국민참여재판을 희망함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직권으로 국민참여재판의 적용을 배제하도록 하는 것은 피고인의 국민참여재판을 받을 권리에 대한 침해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법원에 대한 또 다른 불신을 초래할 것이다. 그리고 일반국민의 법감정이나 상식과 괴리된 판결들의 양산으로 인해 사법권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실추되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국민참여재판의 대상사건을 단순히 중한 형사사건에 한정할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의 법감정과 매우 다른 판단이 내려지고 있는 사건유형 - 예컨대 국가공권력의 판단이 개입되는 사건, 국가공권력이 피해자로 되는 사건, 노동관련형사사건, 국가보안법관련사건 등 - 에까지 그 범위를 확대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 왜냐하면 국민사법참여제도의 도입 초기단계에서 법감정 불일치여부의 확인과 사법권에 대한 국민의 신뢰회복이라는 측면을 고려할 때 이러한 사건들은 일반국민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며, 재판결과에 대한 공정성과 신뢰성을 획기적으로 높임으로써 이 제도의 성공적인 안착을 보장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④ 동법률안은 제 72조에서 참여시민은 원칙적으로 법관의 관여 없이 독자적으로 평의하고 만장일치로 하며, 다만 참여시민 과반수의 요청이 있을 경우 법관이 평의에 참여하여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동법률안 동조 제2항)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참여시민이 만장일치의 의견에 도달하지 못한 경우에는 법관과 함께 토의 하고 다수결로 평결하며, 다만 이 경우에도 법관은 평결에 관여할 수 없다(동법률안 동조 제3항)고 규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유죄평결의 경우 참여시민은 법관과 함께 양형에 관하여 토의하고 개별적으로 양형에 관한 의견을 개진한다(동법률안 동조 제4항)고 규정하고 있다.
첫째, 사개추위는 법관의 평의참여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직업법관이 가지고 있는 법률지식과 법조경험 등을 통해 참여시민의 법관에의 종속성을 초래하며, 이로써 평의의 민주적 논의구조뿐만 아니라 평의과정 자체를 왜곡시킬 개연성이 높다고 할 수 있으므로 어떠한 경우에도 법관이 참여시민의 평의에 참여하는 방식은 차단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평의의 독립성 보장은 참여시민들이 평의과정에서 민주적 토론방식을 거쳐 객관적이고 공정한 유·무죄의 판단을 내릴 수 있게 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둘째, 사개추위는 평의과정의 장기화로 인한 소송의 지연을 고려하여 다수결에 의한 평결을 인정하고 있다. 형사소송에서는 소송경제보다 실체적 진실의 발견과 피고인의 인권보장이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유·무죄의 결정은 피고인에게는 물론 그의 주변에 매우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의미에서 다수결에 의한 평결은 평의과정에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토론을 통한 상호설득보다는 개인의 억지와 주관을 관철시키려는 다수의 횡포와 타협 및 소수의견의 무시가 지배할 위험성이 크게 함으로써 또 다른 민주주의의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
셋째, 사개추위는 참여시민의 양형절차에의 참여와 의견개진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 사법참여제도가 초기단계에서 제대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일반국민들이 재판에 능동적·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불필요한 부담을 부과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특별한 법률지식이 없이도 일반인들이 간단한 설시를 통해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는 영역으로 참여시민의 역할을 제한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률문외한인 참여시민에게 법률문제(양형)에 대한 의견까지 개진하도록 하는 것은 이들에게 과도한 심리적 부담을 주어 일반국민들의 재판과정에 대한 참여의욕을 저하시킴으로써 오히려 국민의 사법참여제도의 순조로운 초기안착을 방해할 것이다.
⑤ 동법률안 제72조는 참여시민의 평결에 기속력을 부여하지 않고, 평결과 양형의견의 내용은 서면에 기재하고 사건기록에 편철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평결의 기속력을 부정하는 것은 참여시민과 직업법관간의 평결결과가 상이한 경우 후자가 전자의 평결을 무시하고 상반된 판결을 내릴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렇다면 참여시민이 재판과정에 의욕을 가지고 적극적·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평결의 권고적 효력은 국민의 판단에 대한 평가를 전제로 하는 것으로서 그 정당성에 문제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고적 효력을 강조하는 데에는 일반인의 판단에 대한 직업법관의 불신이 깔려 있다. 국민의 사법참여제도가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참여시민은 재판절차의 정당성뿐만 아니라 재판결과의 정당성까지 책임지는 존재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비로소 일반인의 적극적인 재판참여를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국민참여재판 결과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감안하여 참여시민의 평결은 법정에서 구두로 공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배심원의 평결에 대한 일반국민의 신뢰를 담보할 수 있는 중요한 제도이며, 장차 국민의 알권리 보장, 공판중심주의와 구두변론주의의 실현에 이바지하게 된다.
제4조 법관의 기수별 서열 승진제도를 철폐하여야 한다. ① 최소한 5년 이상의 법조 경력자 중에서 신임법관을 임명해야 한다.
② 법관의 등급화된 서열구조를 폐지하고, 대법관·고등법원판사·지방법원판사로 단순화하여야 한다.
③ 합의부에서 실질적인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대등한 법관으로 합의부를 구성하는 등의 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④ 법관의 임기제를 실시하되,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정년까지 재임용이 보장되어야 한다.
법원인사시스템 현황 우리 법조계가 안고 있는 만성적인 문제점을 완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 법조일원주의를 비롯한 인사구조개혁을 들 수 있다. 우선 법원인사제도 현황부터 살펴본다.
① 우리나라에서 법관이 되기 위해서는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의 소정 과정을 마친 자이거나 변호사 자격이 있는 자이어야 한다. 그런데 실제 임명되는 대부분의 신임(예비)판사는 경력법조인이 아니라 사법연수원을 갓 졸업한 신참 법조인들이다(현재도 경력변호사 중에서 신규임용되는 경우가 있으나 그 수가 미미하여 실질적인 효과는 거의 없는 형편임). 그것도 사법시험 성적과 연수원 시험 성적이 최상위권에 속하는 우수한 법률가만이 법관을 지망할 수 있다. 이들은 대체로 대학시절부터 사법시험 준비에만 몰두하여 평균연령 30세 전후에 합격한 자들로서 사회적 경험과 식견은 물론이고 인문사회적 소양도 갖추기 전에 시험공부에 뛰어들어 판사가 된 수재형 엘리트들이다.
이로 인하여 국민들은 법정에서 30대의 젊은(어리다고 해도 좋을) 판사에게서 재판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경륜도 있고 나이도 지긋한 중견 이상의 법관은 법관인사구조의 문제로 인하여 조기 퇴직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이런 현상은 더욱 심각해진다. 그 결과 국민들은 법원과 재판을 신뢰하지 못하고 법원은 경험과 이해력이 풍부한 법관으로부터 재판받기를 원하는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② 더 심각한 문제는 현재의 법원인사시스템이 연수원기수별·임관성적별(시법시험성적과 연수원 성적을 합산)로 서열화된 조직문화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갓 법조계에 입문한 신참자를 예비판사로 임용하는 데서 시작된다. 신규 임명된 예비판사는 자신의 연수원 기수와 성적 및 근무평정결과에 따라 순차적으로 “승진”(형식적으로 법관에 있어 승진은 존재하지 않으나 사실상 승진으로 인식됨)해 간다. 법적으로 볼 때 법관은 대법원장, 대법관, 판사의 세 범주로만 구분된다. 특히 법관단일호봉제 실시 이후 판사들 사이에는 직급구분이 존재하지 않으며 일반법관 및 예비판사는 경력에 따른 보수 차이만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10여단계의 사실상의 계급이 존재하며 이 계급의 사다리를 하나씩 거쳐 승진해 나가는 것이 현실이다. 예비판사-지법배석판사-지법단독판사-고법배석판사-재판연구관-지법부장판사-고법부장판사-지방법원장-고등법원장-대법관-대법원장의 위계가 사실상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서열승진구조는 과거 군사정권시절 법관에 대한 노골적인 법관에 대한 간섭 또는 길들이기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운동권 학생에게 무죄선고를 한 서울형사지법 판사들이 지방의 지원으로 좌천되기로 하고 이러한 인사의 난맥상을 법률신문에의 기고를 통해 공개적으로 비판한 서울민사지법 판사가 발령 하루 만에 지방법원 지원으로 전보되기로 했다. 오늘날에도 서열승진구조는 대법원이 그때그때의 사법정책을 일선법관들에게 강요하는 보이지 않는 압력으로 작용하기로 하고 법관 중 일부가 재판에 전심전력하기보다는 대법원과 상급법관의 눈치를 보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또 부장판사와 배석판사가 10년 이상의 경력차가 나게 되므로 합의제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지고 단독재판에 유사한 것이 되고 있다. 이런 사태는 헌법과 법률과 양심에 따를 재판이라는 법관독립 원칙에로 부합하지 않고 국민들의 법원에 대한 신뢰 확보에도 방해요소로 작용한다.
③ 이러한 경력제 관료법관시스템은 우리나라에서는 또 하나의 왜곡된 현상을 가져오고 있는데 전관예우의 문제가 그것이다. 법조계 내에서는 그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으나 일반국민들은 누구나 전관예우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는 바이다. 1990년대 말의 의정부법조비리, 대전법조비리 사건은 말할 것도 없고, 2000년대에도 심심찮게 전관예우에 관련한 신문기사 등을 읽을 수 있다. 대법원에 상고된 사건 중 44%가 심리불속행으로 본안심리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있으나 대법관이 변호를 맡은 상고사건 중에는 심리불속행이 전혀 없다거나, 전체 대법원 사건 중 전직 대법관이 수임한 사건이 69%나 차지한다거나, 법관출신 퇴직자의 96%가 변호사개업을 했고 이들 중 90%가 최종근무지 관할구역에서 개업했다는 등의 소식이 그런 것들이다.
전관예우의 원인은 복합적인 것이라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으나 신참법조인을 법관으로 임용하여 서열형 관료체제에서 승진시켜가는 인사구조와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다. 대법관, 고법부장 승진에서 탈락한 판사들이 “후배들을 위한 용퇴”라는 명목으로 옷을 벗고 대거 사직하고 변호사 개업을 함으로써 “전관예우”의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전관예우는 지법부장에서 사직하고 개업한 이들에 국한되지 아니하는데 판사경력 5-6년된 법관들도 장래 법관으로 계속 승진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여 사직하고 변호사 개업을 많이 하고 있다. 법관 출신의 변호사가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어 사건수임이 집중되기도 하겠지만 일반 국민들은 전관이 갖는 법조계 내부의 인맥관계에 의한 이익을 기대하고 사건을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전관예우는 재판독립이나 법원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주범으로 간주된다.
이상의 문제점들을 고쳐나가는 데 있어 완전한 해결책은 못되겠지만 법조일원주의의 도입 등 인사제도 개혁이 적어도 문제를 상당 부분 완화하고 정상적인 재판작용과 사법서비스를 구현하는 지렛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법조일원주의의 도입 법조일원화는 현재와 같이 연수원을 갓 수료한 신참법조인 중에서 (예비)판사를 임용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경력 이상의 법조인 중에서 법관을 신규임용하자는 것이다. 사법개혁위원회 최종보고서에서도 법조일원화는 주요 안건으로 다루어지고 있어서, 모든 법관을 5년 이상의 변호사, 검사 기타 영역에서 법률사무에 종사한 경력이 있는 자 중에서 선발한다는 원칙을 천명하였다. 이에 부응하여 사법개혁추진위원회에 보고한 법조일원화 실시계획에서 대법원은 2006년부터 단계적으로 변호사 등의 임용규모를 확대하여 2012년에는 신규임용인원의 50%(75명 내외)를 경력변호사 등에서 임용할 것이며 이에 따라 연수원 수료 즉시 임용되는 예비판사의 임용과 법무관 출신 법관임용은 단계적으로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법조일원주의 도입에 대해 원칙적으로 찬성한다. 법조일원화는 사회적 경험이 부족한 젊은 법관에 의한 재판에서 생기는 불신을 해소할 것이다. 변호사 자격을 획득하고 5년 이상의 경력을 쌓은 후 대체로 40대 이상이 되어야 법관에 임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신참법조인을 받아들여 도제식으로 법관을 키워내는 방식이 아니라 이미 다년간의 경력을 갖춘 자를 법관으로 임용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법원내부의 위계적 서열구조를 혁파하는 데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나아가 현재와 같이 법관으로 재직하다가 변호사로 나서는 것과는 반대로 변호사로 상당 기간 활동하다가 법관으로 임명되는 것이므로 전관예우의 문제를 상당 정도 불식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몇 가지 반드시 고려해야만 하는 사항이 있다. 첫째, 변호사 수의 대폭 확대가 동반되지 않는다면 법조일원화는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우리의 법조인선발제도는 변호사자격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 아닌 판·검사를 임용하기 위한 시험이었다. 따라서 사법시험 선발인원이 많을 수가 없었고 변호사 수도 대단히 제한적이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도 사법시험 300명 합격자를 유지했고 이들의 다수가 법조인의 길을 판·검사로 시작했다. 그 결과 법조일원주의가 아닌 법조다원주의가 우리 법조계의 특징이었다. 판사집단, 검사집단, 변호사집단으로 처음부터 나뉘어져 출발했던 것이다. 하지만 법조일원주의는 엄청나게 많은 수의 변호사들로 구성되는 단일한 법조인 풀을 전제로 이들 중에서 판사 또는 검사를 임용하는 제도이다. 사법시험 합격자 수가 현재 1000명으로 고정되어 있지만 이것이 대폭 늘어나지 않는다면 나름대로 입지를 굳힌 경력변호사 중에 법관을 지원하는 수는 미미한 수준에 그칠 것이고 결국 다시 신규진입자 중에서 판사를 선발해야 하는 사태를 막을 수 없게 된다.
장차 판·검사 임용숫자가 대폭 늘어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현실을 감안할 때 더욱 그러하다. 법관 1인당 본안사건부담률이 1000건을 훨씬 넘는 현 상황이 계속된다면 법관을 지원하는 변호사를 찾아보기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또한 이는 판사의 처우개선과도 관련된다. 판사의 봉급과 변호사의 수입의 차이가 극명하게 벌어지는 현 상황에서 법조일원화의 도입은 구두선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변호사 수를 대폭 늘리고 법관의 처우를 개선한다 해도, 현재 법원 내에 존재하는 사실상의 서열구조를 그대로 방치한 채 5년 경력의 변호사를 지법배석판사로 임용하는 것으로만 법조일원화를 이해한다면 지금의 예비판사기간을 5년으로 연장하는 효과만 가져올 뿐이다. 5년 경력의 변호사가 말단 법관으로 임용되어 위계의 사다리를 한 단계씩 올라가면서 승진해야 한다면 법조일원주의의 도입으로 기대했던 서열 위계구조의 타파는 달성할 수 없으며 재판의 충실과 독립도 지금의 사정보다 달라질 것이 없다. 따라서 신규임용법관을 5년 경력 변호사에 한정해서는 안 되며 이를테면 경력 10년, 20년 이상의 변호사도 대거 임용하여 중요한 직책을 맡겨야 한다. 즉 지방법원, 고등법원, 대법원 할 것 없이 모든 수준에서 법조일원화를 구현해야 한다. 그래야만 임용순서에 따른 법관서열화를 방지할 수 있다.
서열구조 폐지와 합의부 재판의 실질화 법관의 서열승진구조를 혁파하는 것이 법원개혁의 핵심이다. 지금의 지방법원 배석판사로부터 대법관에 이르는 가파른 사실상의 위계체제를 해제·재구성해야 한다. 승진이나 퇴직이라는 관념을 없애고 법관이라면 누구나 대등한 지위를 누리면서 정년까지 소신껏 업무에 전념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종국적으로 모든 법관을 대법관·고등법원판사·지방법원판사로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
대법관은 임명 자체가 특수한 절차에 따라야 하므로 일단 논외로 한다면 무엇보다 고법부장승진제도를 실질적으로 폐지하는 것이 급선무다. 고법부장직은 동기법관들 중에서 선별발탁하여 승진시켜왔는데, 승진에서 탈락한 법관들이 대거 사직하고 변호사 개업을 함으로써 전관예우의 시비를 불러일으키는 주요 원인이 되어왔다. 현재 법관단일호봉제의 도입으로 법관의 직급이 사라졌다고 하나 행정부의 차관급에 해당한다는 고법부장이라는 제도가 남아있는 한 승진한 법관과 그렇지 못한 법관 사이에 사실상의 대우의 차이가 없을 수 없고 또한 고법부장에 오르지 못한 법관은 그에 따른 불명예를 안고서 과연 법관직에 계속 전념할 수 있겠느냐는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고법부장직을 완전히 철폐하고 고등법원 재판부를 대등한 경력의 법관들로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재판장은 합의부판사들이 돌아가면서 맡으면 될 것이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지법부장제도 역시 폐지함이 옳다. 지방법원의 과도한 업무량과 부장과 배석 사이의 경력차이로 인하여 합의부재판이 사실상 부장판사의 단독심처럼 운영되고 배석들은 각자 맡은 사건에서 부장을 보조하여 판결문을 작성하는 역할에 그쳐왔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상태를 종식시키고 제1심 사건은 원칙적으로 단독심으로 재판하도록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법조일원화가 본 궤도에 오르면 경력법조인이 법관으로 임용되므로 1심을 원칙적 단독심으로 해도 문제가 없을 것이다. 또한 1심법원과 항소심법원 사이의 전보는 본인의 뜻에 따라 예외적으로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제 1심법원은 원칙적으로 단독판사, 항소심법원은 합의부를 구성하는 대등한 법관들로 구성되어 승진과 서열이라는 관념이 없이 모든 법관이 맡은 직무를 정년까지 수행하는 관행이 정착될 것이다.
한편 법관인사에서 경향교류에 의한 순환보직의 원칙이 있으나 동기 중에서 서열이 앞서는 법관은 서울과 수도권을 잘 벗어나지 않는 반면 그렇지 못한 법관은 주로 지방으로만 맴도는 경향이 있었다. 전보·보직권을 대법원장이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는 재판독립에 위협이 될 수 있다. 대법원장의 인사권한을 대폭 고등법원 이하로 나누어주어 법원을 분권화하고, 당해 지역 내에서만 법관을 전보하는 지역법관제를 확대 실시해야 할 것이다.
원칙적인 정년보장 법관은 대법원장에 의해 임기 10년으로 임명되므로 10년마다 재임용 받아야 한다. 과거 군사독재시절 재임용제도가 정권의 심기를 거스르는 판결을 한 법관을 퇴출시키는 제도로 이용되기도 하여 사법권 독립에 큰 위협이 되었다. 그러나 법관의 임기제는 헌법에 규정되어 있으므로 법관재임용제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개헌을 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미국의 연방판사는 종신직이다.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 한 정년 없이 사망까지 자리를 지킬 수 있다. 재판의 독립이 그만큼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미국과는 역사적 전통과 사회의 구조가 상이하므로 법관종신제를 그대로 수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법관정년제를 그대로 유지하되, 재임용제도만은 원칙적으로 폐지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개헌을 하기는 곤란하므로 법관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현저한 장애가 없는 한 사실상 재임용하는 헌법관행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2005년 법원조직법 개정에서 판사의 연임에 관한 조항이 신설됨으로써 재임용 탈락의 기준이 선언되었으나 재임용 권한의 남용이 없도록 합리적인 제도와 관행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 원칙적으로 재임용 탈락이 사라져서 법관은 재임용에 신경쓰지 않고 직무에 전념할 수 있어야 한다.
제5조 법원행정처의 기능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 ① 법원행정처장을 판사 이외의 사람으로 임명해야 한다.
② 법원행정처의 기능 중 법관인사 관리기능, 사법정책 연구기능을 폐지하여, 법원행정처는 순수히 법원행정 지원업무를 담당하도록 한다.
③ 법원행정처의 기능을 분권화해야 한다.
법원개혁의 아젠다 - 사법관료권력의 혁파 대체로 사법부의 개혁을 논의하는 경우 그 주된 과제는 사법의 민주화와 사법의 독립을 향해 있다. 그리고 전자는 사법정의에 대한 시민들의 접근가능성(accessibility)의 문제로, 그리고 권위주의적 통치가 ‘사라진’ 현재의 시점에서 새로이 부각되는 후자의 문제는 더 이상 “정치권력 v. 사법권력”의 구도가 아니라 “사법관료권력 v. 법관권력”의 문제로 정리된다.
일제 이래 우리의 법원은 관료적 폐쇄성을 바탕으로 하는 계층구조로 일관되어 왔다. 법관은 고시에 합격한 어린 영재들로 충당되며(소위 ‘순혈주의’) 이들은 법조인으로서의 자기정체성을 그 연륜과 공적을 바탕으로 하는 승진의 사다리 속에서 구축하여 왔다(계층제적 관료주의). 그래서 ‘세속에 물들지 않은’ 젊은 법관들을 계층구조속에 편입시키면서 예비판사, 평판사, 부장판사 등 공식·비공식으로 세분화된 서열구조내에서 이루어지는 연공서열에 의거한 승진을 미끼로, 법률 이외의 그 어떠한 가치나 이념도 법판단의 준거로 삼지 못하게 세뇌시킨다.
한편에서는 부장판사가 그가 ‘데리고 있는’ 배석판사들에게 자신의 법기술을 복제시키고, 다른 한편에서는, 지법-고법-대법원에 이르는 3심구조가 이 계층구조와 맞물리면서 대법원의 법판단이 하등의 회의도 없이 그대로 하급법원의 법판단으로 확대재생산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우리의 사법부는 관료적 형식주의를 법추론의 실체로 오인하면서 모든 법판단의 기준을 전체로서 통일된 법원의 법의식에만 한정하는 경직성을 보이면서, 보수주의자도 진보주의자도 없이 단일한 색깔로 가득찬, 유례없는 ‘모범생 집단’으로 순화된다. 고법부장판사로의 발탁승진제도는 이러한 순화의 마지막 단계를 이룰 뿐이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법관의 계층구조는 사법의 민주화에도 정면으로 충돌한다. 강력한 중앙통제권을 가지는 대법원의 의중을 관찰하는 법관의 ‘닫힌 시선’이 존재하기 마련이며, 여기서 소송당사자는 물론 시민사회의 법감정 또한 손쉽게 차단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은 이 과정에서 검사동일체식의, 사실상의 ‘법원동일체의 현실’이 보장되고, 혁신을 저어하는 고급법관들의 폐쇄적 사고를 그대로 추종하는 ‘젊은 법관’들의 집단무의식이 구축되고 그를 통하여 일반대중의 정의감정은 물론 사회의 형평감까지도 자의적으로 재단하는 무소불위의 법관들이 양산되게 만드는 것이다.
법원행정처: 사법 레비아단 이렇게 법관계층제의 문제, 인사의 문제 등 우리 사법부가 가지는 문제점이 집약되면서도 사법개혁의 요청들이 유효하게 좌절되는 지점이 바로 법원행정처이다. 법원행정처는 인사관리실이나 기획조정실과 같은 강력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전국의 법관들에 대한 인사나 그 재판관련정책들을 통할하는 중추기관으로서의 성격을 가진다. 뿐만 아니라, 사법정책연구실은 단순한 연구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로써 전국의 법관들이 준수하여야 할 각종의 행위준칙이나 정책규범들을 형성하는, 집행기능의 전단계로서 작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권한을 바탕으로 법원행정처는 법관의 재판을 보좌하는 업무의 수준을 넘어 철저한 계층체계내에 있는 법관들의 인사권을 바탕으로 스스로가 법관에 대한 감시·감독의 기관으로 기능하면서 전국의 법관과 그 결과로서의 전국의 재판을 평균화·획일화하는 거대법관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어떤 이유와 명분에서건 이러한 거대조직으로서의 법원행정처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독립이 강조되는 사법의 기능에 이러한 기획조정의 업무가 필요없을 뿐 아니라, 법관의 인사 역시 중앙의 한 부서가 하나의 기준으로써 일괄처리하는 방식은 사법에 어울리지 않는다. 또한 각종의 사법정책연구는 별도의 연구소에서 할 일이지 그것이 인사와 기획조정의 기능을 가지는 법원행정처의 내부조직으로 수행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기능들이 대법관의 통제하에 있는 법원행정처에 집중되어 있음은 무엇 때문인가? 그 이유는 바로 이 법원행정처가 전국의 법관은 하나의 법관으로 변질시키며, 이를 통하여 스스로 거대한 사법 레비아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원행정처는 기획조정실, 사법정책연구실, 인사관리실외에 총무국 등 4개국·4개심의(담당)관·13개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실장, 국장, 심의관·담당관 등 주요보직은 모두 판사로 임용될 수 있도록 해 놓고 있으며, 이에 더 나아가 실질적으로도 주요한 보직은 모두 판사로 임용하고 있다. 즉, 법관이 아닌 법원행정관료로서 법관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대법원에 총 65명의 정원을 가진 재판연구관을 두게 한 제도와 엇물리면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점의 문제를 야기한다.
첫째, 이러한 구조는 각급의 법관(주로 부장판사 승진전의 판사, 중견급 부장판사, 그리고 고법부장 등)을 법원행정조직에 편입시킴으로써 그들을 순치하는 장치를 구축한다. 재판연구관제도는 그 대표적인 예로, 10년 정도의 경력이 되는 부장판사 승진 직전의 판사들을 대상으로 대법원이 선호하는 법적 지향을 하향전달하고는 수단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둘째, 그것은 오히려 법관들을 관료화시키는 기제로 작용한다. 일부의 (엘리뜨) 법관을 선발하고 이들에 대하여 전체 사법체계를 통할하는 훈련을 시킴으로써 한편으로는 미래의 법원관리자를 양성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의 중앙지배를 더욱 공고히 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인사나 기획, 정책연구 등을 중견의 법관들이 장악하게 함으로써 그 행정과정의 결과들이 하급법원의 법관들에 의하여 정당한 것으로 수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서 후자의 문제는 참으로 심각한 상황을 형성하기 조차 한다. 즉, 그것은 사법부 내에 일종의 inner circle을 형성하게 하고 이 소수의 중앙이 전체로서의 사법부를 유효하게 지배하도록 만드는 교묘한 권력통제의 장치들이 구축되도록 한다. 그 단적인 예가 얼마전 참여연대가 조사한 “1970년대 이후 대법관 임명실태”(사법감시 제2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