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이든 방송이든 기사는 육하원칙을 따른다.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같은 먼 나라의 전쟁에 관한 기사라도 꼭 여섯째인 ‘왜’까지 설명하려 한다.
“방화·폭력…언제까지 이런 시위 참아야 하나.” 23일치 신문들의 기사 제목이다. 22일 전국적으로 7만5천여명이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정규직 권리, 교원평가제 등에 대한 의견을 주장하기 위해 연 대규모 집회·시위를 전하는 기사였다.
하지만 이들 기사엔 ‘왜’가 없다. 태평양을 건너와 이번 집회에 참석한 미국의 ‘반전 어머니’ 신디 시핸, 노구를 이끌고 시위에 참여했다 다친 칠순의 농부, 결의문을 낭독한 유명 영화감독, 시위대를 배경으로 전경들 사진을 찍어주던 경찰 채증반원의 망중한, 우리의 이웃이기도 한 수많은 시위대들…. 이런 풍경들 너머의 ‘왜’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그나마 ‘사실’도 과장됐다. 기사는 시위 군중과 경찰의 충돌만 크게 전하고 있다. 극심한 교통혼잡과 경찰의 ‘무능력한 대응’이 기사의 상당부분을 차지했다.
22일 오후 서울의 상황은 기사와는 많이 달랐다. 예를 들어, 오후 5시30분께 2300여명의 시위 참가자들이 차도를 따라 청계광장으로 향할 때, 경찰은 4개 차로에 걸쳐 미리 교통을 통제했다. 애초 집회신고에는 1개 차로만 이용하겠다고 했지만, 시위대의 신속한 이동을 위해 경찰이 충분한 차로를 ‘배려’한 것이다.
100여m를 지나 2개 차로로 자연스럽게 이동로가 좁아졌고, 을지로1가 사거리를 지나면서는 1개 차로만 이용했다. 남대문경찰서 김명호 경비과장은 “잘 되고 있다”는 말로 상황을 설명했다. 만 1년 된 기자의 눈에 몇몇 신문의 기사는 현실을 보여주기보다 정해진 방향대로 ‘요리’된 것으로만 비친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