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양심적인 검사의 고백(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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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합원 댓글 0건 조회 1,776회 작성일 06-11-29 16:55본문
한 양심적인 검사의 고백
저(정선숙)와 관계된 건설비리 사건을 수사하던, 박재오 검사(전 청주지청)는 자신이 쓴 글 한편을 저에게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1999년 12월 15일에 쓴 ‘잠 못 이루는 밤’이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저는 이 글을 읽고 또 읽은 뒤 1부를 복사해서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습니다. 한 양심적인 검사의 진실을 담은 이 글을 검찰뿐 아니라 온 세상에 알리는 것이 저의 의무라고 생각하여 한 자도 고치지 않고 전문을 공개합니다.
잠 못 이루는 밤’
“사무실에서 어둠을 밝히며 산적된 사건으로 몸은 피곤하지만 나는 괴로워하지 않았소. 작은 도시에서 조그마한 임대 아파트에 사시는 부모님께 죄송스러운 마음은 그지없으나 나는 괴로워하지 않았소. 친구들의 모임에서 초라한 옷을 입고 있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은 그지없으나 나는 괴로워하지 않았소. 외국으로 휴가를 떠나는 친구들을 보면서 우리도 비행기 한 번 타보자는 아이들에게 안쓰러운 마음은 그지없으나 나는 괴로워하지 않았소.
사건 관계인의 봉투를 거절하면서 그 안에 얼마나 들었을까 궁금해 해 보았지만 나는 괴로워하지 않았소. 사건을 잘못 처리하였다면서 얼마나 출세하나 두고 보자는 말을 들었을 때 재고 삼고하며 고민하여 보았지만 나는 두려워하지 않았소. 조직폭력배들로부터 수많은 협박을 받으면서 가족의 안위를 걱정해보았지만 나는 두려워하지 않았소.
검사로 임관되기 전날 “돈 없고 힘없는 사람의 지붕이 되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새기며 하늘을 우러러 한 점의 부끄러움 없고, 주위 사람이 굽어보아도 한 점의 부끄러움 없이 살아가길 원하였으나, 요즘은 부끄러움과 괴로움 때문에 밤잠을 설친다오. 전 전대통령에 대하여 공소권 없음의 처분을 하였다가 다시 구속영장을 청구하던 날 나는 부끄러움에 울었소. 늙으신 어머니, 초라한 옷을 입은 아내, 사랑하는 자식들 앞에서 대성통곡을 하였소. 그리고 죄송하다고... 요즘은 눈물샘도 말라버렸다오.
어머니의 실망스러운 안색, 아내의 의아한 눈빛, 아빠의 직업을 친구들에게 말할 수 없다는 사랑하는 자식들의 분노에 찬 표정에 나는 괴로워하고 있소. 폭탄주로 괴로움을 달래면서 후배 검사들에게 검사의 덕목을 침이 마르도록 강변하던 나의 모습을 생각하면 나는 한없이 부끄러워지고 있소. 사무실에서 사건 관계인에게 올바른 삶을 살라고 충고하면서도 나는 괴로워하고 있소.
사업에 실패하여 고향을 떠나 시장에서 반찬 장사를 하면서 조상님께 명절 인사도 드리러 오지 못하는 하나밖에 없는 동생에게 도움을 줄 수 없는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소. 자식이 훌륭한 검사가 되게 해달라고 다리의 근육이 뭉쳐 걷지도 못할 정도로 불공을 드리시는 어머님이 생존해 계시는 동안 검사의 생활을 접지 못하는 나는 괴로워하고 있소.
내일 신문과 방송에 우리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일들이 또 얼마나 많이 일어날까 걱정하며 밤하늘의 별들을 보면서 잠 못 이루는 수많은 검사들과 함께 나는 괴로워하고 있소. 이 밤도 우리 검찰이 국민에게 사랑받고, 자랑스런 검찰이 되도록 간절히 기원하면서 마음 가득한 부끄러움과 괴로움 때문에 새우처럼 구부리고 잠을 청한다오.”
청주지검에 근무하던 박재오 검사를 제가 만난 것은 1999년 12월이였습니다. 검찰과 경찰이 제 사건을 서로 떠넘기기만 하던 상황에서 박검사는 진지한 수사 의욕을 보여줬던 유일한 검사였습니다. 박검사는 처음에 “시공사 측의 비리혐의가 포착되었으니 1주일 안에 박차를 가하여 조사를 끝내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박검사는 침통한 얼굴로 “이 문제는 매우 골치 아프고 복잡해서 위에서 조사를 하지 않으려고 하니까 아무래도 해결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고 ‘잠 못 이루는 밤’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약 1개월 뒤에 검찰을 떠나야 했습니다. 청주지검에 발령 받은 지 불과 5개월 만이라고 합니다. 저는 충주 고속버스에서 라디오를 통해 박재오 검사의 퇴임사를 들었습니다. “검사가 소신을 갖고 사건을 처리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앞길이 창창한 검사가 사건 수사와 관련하여 오죽 심한 상부의 압력을 받았으면 사표를 냈겠습니까?
이 사건의 발단은 충북 제천시 한수면 탄지리의 야산이 무너져 국도 일부를 덮은 사건이었습니다. 담당 관청과 시공사는 모두 16억여 원의 국비를 들여 복구공사를 한다는 명분으로 사고지와 관련 없는 야산을 허물고, 이 과정에서 나온 흙 수만 트럭 분량과 나무를 소유주의 허락도 없이 돈을 받고 팔아넘기는 절도 행위를 범했습니다. 야산의 소유주인 저는 흙을 산 사람들과 주민들의 증언을 수천 장 분량의 녹취록에 담아 범죄자들을 고소했으나, 검찰은 모든 증거를 채택하지 않고 수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담당 검사를 수십 차례 바꾸면서 시간만 끌다가 무혐의 처리를 해버렸습니다. 이 같은 검찰의 이해할 수 없는 행위의 배후엔, 대검 차장 검사와 충주 국회의원을 역임했으며, 지역 건설회사들과 긴밀한 커넥션을 맺고 있는 이원성이라는 거대한 세력가가 있었습니다.
최근 검찰과 법원의 밥그릇 싸움을 여러 지면에서 읽었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너무 화가 납니다. 강자에게 굴종하고 서민에게 방자한 한국의 검찰 권력은 더 이상 수사권을 요구할 자격이 없습니다.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사실을 저는 절실한 체험을 통해 터득했습니다. 이제 검찰의 횡포 속에 묻혀버린 서민의 통절한 사연을 풀어헤치고자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사이트에서 보시기 바랍니다.
브레이크, 뉴스 http://www.breaknews.com/new/search.html, 검색창에서 ‘정선숙’을 검색해 주십시오.
경실련 http://www.ccej.or.kr/BBS/freebbs_list.html, 토론방에서 ‘정선숙’을 검색해 주십시오.
http://www.kcwc21.org/bbs/zboard.php?id=free, 자유게시판을 봐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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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정선숙)와 관계된 건설비리 사건을 수사하던, 박재오 검사(전 청주지청)는 자신이 쓴 글 한편을 저에게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1999년 12월 15일에 쓴 ‘잠 못 이루는 밤’이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저는 이 글을 읽고 또 읽은 뒤 1부를 복사해서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습니다. 한 양심적인 검사의 진실을 담은 이 글을 검찰뿐 아니라 온 세상에 알리는 것이 저의 의무라고 생각하여 한 자도 고치지 않고 전문을 공개합니다.
잠 못 이루는 밤’
“사무실에서 어둠을 밝히며 산적된 사건으로 몸은 피곤하지만 나는 괴로워하지 않았소. 작은 도시에서 조그마한 임대 아파트에 사시는 부모님께 죄송스러운 마음은 그지없으나 나는 괴로워하지 않았소. 친구들의 모임에서 초라한 옷을 입고 있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은 그지없으나 나는 괴로워하지 않았소. 외국으로 휴가를 떠나는 친구들을 보면서 우리도 비행기 한 번 타보자는 아이들에게 안쓰러운 마음은 그지없으나 나는 괴로워하지 않았소.
사건 관계인의 봉투를 거절하면서 그 안에 얼마나 들었을까 궁금해 해 보았지만 나는 괴로워하지 않았소. 사건을 잘못 처리하였다면서 얼마나 출세하나 두고 보자는 말을 들었을 때 재고 삼고하며 고민하여 보았지만 나는 두려워하지 않았소. 조직폭력배들로부터 수많은 협박을 받으면서 가족의 안위를 걱정해보았지만 나는 두려워하지 않았소.
검사로 임관되기 전날 “돈 없고 힘없는 사람의 지붕이 되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새기며 하늘을 우러러 한 점의 부끄러움 없고, 주위 사람이 굽어보아도 한 점의 부끄러움 없이 살아가길 원하였으나, 요즘은 부끄러움과 괴로움 때문에 밤잠을 설친다오. 전 전대통령에 대하여 공소권 없음의 처분을 하였다가 다시 구속영장을 청구하던 날 나는 부끄러움에 울었소. 늙으신 어머니, 초라한 옷을 입은 아내, 사랑하는 자식들 앞에서 대성통곡을 하였소. 그리고 죄송하다고... 요즘은 눈물샘도 말라버렸다오.
어머니의 실망스러운 안색, 아내의 의아한 눈빛, 아빠의 직업을 친구들에게 말할 수 없다는 사랑하는 자식들의 분노에 찬 표정에 나는 괴로워하고 있소. 폭탄주로 괴로움을 달래면서 후배 검사들에게 검사의 덕목을 침이 마르도록 강변하던 나의 모습을 생각하면 나는 한없이 부끄러워지고 있소. 사무실에서 사건 관계인에게 올바른 삶을 살라고 충고하면서도 나는 괴로워하고 있소.
사업에 실패하여 고향을 떠나 시장에서 반찬 장사를 하면서 조상님께 명절 인사도 드리러 오지 못하는 하나밖에 없는 동생에게 도움을 줄 수 없는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소. 자식이 훌륭한 검사가 되게 해달라고 다리의 근육이 뭉쳐 걷지도 못할 정도로 불공을 드리시는 어머님이 생존해 계시는 동안 검사의 생활을 접지 못하는 나는 괴로워하고 있소.
내일 신문과 방송에 우리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일들이 또 얼마나 많이 일어날까 걱정하며 밤하늘의 별들을 보면서 잠 못 이루는 수많은 검사들과 함께 나는 괴로워하고 있소. 이 밤도 우리 검찰이 국민에게 사랑받고, 자랑스런 검찰이 되도록 간절히 기원하면서 마음 가득한 부끄러움과 괴로움 때문에 새우처럼 구부리고 잠을 청한다오.”
청주지검에 근무하던 박재오 검사를 제가 만난 것은 1999년 12월이였습니다. 검찰과 경찰이 제 사건을 서로 떠넘기기만 하던 상황에서 박검사는 진지한 수사 의욕을 보여줬던 유일한 검사였습니다. 박검사는 처음에 “시공사 측의 비리혐의가 포착되었으니 1주일 안에 박차를 가하여 조사를 끝내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박검사는 침통한 얼굴로 “이 문제는 매우 골치 아프고 복잡해서 위에서 조사를 하지 않으려고 하니까 아무래도 해결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고 ‘잠 못 이루는 밤’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약 1개월 뒤에 검찰을 떠나야 했습니다. 청주지검에 발령 받은 지 불과 5개월 만이라고 합니다. 저는 충주 고속버스에서 라디오를 통해 박재오 검사의 퇴임사를 들었습니다. “검사가 소신을 갖고 사건을 처리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앞길이 창창한 검사가 사건 수사와 관련하여 오죽 심한 상부의 압력을 받았으면 사표를 냈겠습니까?
이 사건의 발단은 충북 제천시 한수면 탄지리의 야산이 무너져 국도 일부를 덮은 사건이었습니다. 담당 관청과 시공사는 모두 16억여 원의 국비를 들여 복구공사를 한다는 명분으로 사고지와 관련 없는 야산을 허물고, 이 과정에서 나온 흙 수만 트럭 분량과 나무를 소유주의 허락도 없이 돈을 받고 팔아넘기는 절도 행위를 범했습니다. 야산의 소유주인 저는 흙을 산 사람들과 주민들의 증언을 수천 장 분량의 녹취록에 담아 범죄자들을 고소했으나, 검찰은 모든 증거를 채택하지 않고 수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담당 검사를 수십 차례 바꾸면서 시간만 끌다가 무혐의 처리를 해버렸습니다. 이 같은 검찰의 이해할 수 없는 행위의 배후엔, 대검 차장 검사와 충주 국회의원을 역임했으며, 지역 건설회사들과 긴밀한 커넥션을 맺고 있는 이원성이라는 거대한 세력가가 있었습니다.
최근 검찰과 법원의 밥그릇 싸움을 여러 지면에서 읽었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너무 화가 납니다. 강자에게 굴종하고 서민에게 방자한 한국의 검찰 권력은 더 이상 수사권을 요구할 자격이 없습니다.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사실을 저는 절실한 체험을 통해 터득했습니다. 이제 검찰의 횡포 속에 묻혀버린 서민의 통절한 사연을 풀어헤치고자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사이트에서 보시기 바랍니다.
브레이크, 뉴스 http://www.breaknews.com/new/search.html, 검색창에서 ‘정선숙’을 검색해 주십시오.
경실련 http://www.ccej.or.kr/BBS/freebbs_list.html, 토론방에서 ‘정선숙’을 검색해 주십시오.
http://www.kcwc21.org/bbs/zboard.php?id=free, 자유게시판을 봐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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