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단맛과 쓴 맛을 구분할줄 아니 제법 술 예찬론자가 되었다. 결혼전까지도 술이라곤 전혀 입에도 대지 못했다. 사이다나 콜라같은 탄산음료만 마셔도 취해 얼굴이 벌개지곤 하였다.그때는 나이들어도 술한잔 마시지 못할줄 알았다.
그런데 세월이 사람을 변화시켜놓는 것인지 요즘은 은근이 술이 땡길때가 있다. 기분의 변화에 따라 쓴 술이 그리울때가 있고 단술이 그리울때가 있다.술 한잔이 그리운 날에는 마트를 돌면서 찬 거리보다는 술 안주 위주로 장바구니를 채운다.
남편이 소주를 애음하는 것에 어떤 안주가 적합할까,선택하고 고르는 시간에도 곧 펼쳐질 풍경을 생각하면 기분이 흐뭇하다. 남편과 마주앉아 삶을 논하며 주거니 받거니 하는 술잔과 정에 취하다 보면 세상 부러울것도 없고 욕심낼것도 없는 평화의 경지에 올라 세상이 내것이 된 기분이다.
인생에 술이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살까,생각해보다가 피식 웃기도 한다. 술은 기쁠때는 두배로 기쁨에 취하게 하지만 우울할땐 벼락아래 바닥으로 추락시켰다가 스스로 위로하며 기어오르게 한다.
술은 닫혔던 마음을 열어놓는다. 자리를 함께한 모든 사람앞에서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는 대담성을 알려준다.술에 취하면 횡설수설한다고 인간 취급도 못 받는 사람들도 그중에 있겠지만 술의 힘을 빌려 마음속에 담았던 말들을 털어놓을수 있으니,
말 그대로 취중진담이다.좋은 술 자리는 상사와 직원의 관계를 원만하게 만들며 사기 충전에 좋은기회로 자리잡아 가지만,반대로 공짜 회식자리란 생각에 과하게 마신술은 서로의 등을 돌리게 만들기도 한다.
어떤 것이든 넘치면 모자란 것만 못하니 술 또한 자신의 주량에 약간 못 미칠정도로 마셔서 상대방에 이야기 내용에 귀 기울여 주는 정도면 좋을것이라 본다.술에 취해 고음방가를 한다거나 추태를 부린다면 사람보다는 개에 가깝다는 인식을 불러오니,그 또한 주의할 일이다.
사람은 사람다울때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누구나 힘들때가 있고 괴로울때가 있다.자신의 자리를 박차고 나올때도 있고 즐겁게 살자고 태어난 삶인데 어찌 이 모양일까,한탄하는 삶일수도 있다.누구에게나 삶의 굴곡은 있다.삶의 연륜으로 그 시간들을 얼마만큼 지혜롭게 넘기며 사느냐,하는 것에 사색에 빠질 필요도 있다고 본다.
파랑새를 가슴에 품을수 있는 기회일수도 있고 가슴에 있던 행복의 파랑새를 저 멀리 날려보낼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 인생의 어디쯤 가고 있을까? 요즘 들어 가끔씩 생각해보곤 한다. 직장에서의 하루가 따분하게 느껴지고 기분도 우울하며 내 자리를 버리고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이럴때마다 평생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전 세계의 남편들에게 존경스러움이 느껴진다.
남자들도 여자들처럼 감정의 기복도 있을 것이고 때에 따라선 결혼에 따르는 책임감에 눌려 철창에 갇힌 기분도 느낄것이다. 이런 저런 스트레스에 하루에도 몇번씩 사표를 던지고 홀가분하게 건물을 탈출하고 싶은 생각들이 있을 것이다.
가족의 끼니를 해결하는 남편들은 평생 직장 생활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책임감에 이런 생각들을 못하는 것으로만 알았었다.소박한 술상 앞에놓고 내 기분을 꺼내 술잔에 덤으로 따라놓으니 남편도 동감을 한다. 그런데 왜 그런 모습들을 가족에게는 보인적이 없었던 것일까?
그것은 자신을 믿고 의자하는 가족들에게 나약함을 보일수 없었을 것이다. 철없던 결혼 초년생이었을때 시도 때도 없이 부부 싸움을 했고 내 생각이 옳은 것처럼 화를 내기도 했는데,그때 출근길에 오르면서 남편의 기분은 어떠했을까?
이십년전의 일이라 잊혀진줄 알았는데,늘 가슴에 담고 있었나보다. 경험에서 얻은 진정한 이해로 미안하다고 부끄러움 웃음으로 털어놓는 내 모습에 남편은 미소를 지었다.술잔을 들고 있는 남편에게 앞으로도 행복한 삶의 든든한 동행자가 될거라는 생각을 눈빛으로 보냈다.
남편의 어깨에 평화가 내려앉고 있음을 느낄때 나도 술 한잔을 털어넣고 우울한 주범인 삶의 지꺼기를 행복으로 발효하고 있었다.살아오면서 인생이 우울할게 느껴질때마다 남편과 나에게 화해의 악수를 청하게 한 술의 공로를 인정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