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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 운동이 전 세계에서 해체됨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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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인권보고 댓글 0건 조회 1,144회 작성일 06-11-08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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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1848년 마르크스는 말했다. “하나의 유령,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1871년 3월, 파리코뮌 폭동이 두 달 동안 지속되어 파리에 남아있던 대부분의 문명이 파괴되었다.

1917년 러시아에서 소비에트 공산 혁명이 발발했고, 이후 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소련 공산당에 의해 제거됐으며 그 중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총살당했다.

1949년 중공이 정권을 수립했으며 이때부터 전 중국인의 절반 이상이 중공의 박해를 받아 대략 6천만 내지 8천만 명의 사람들이 비정상적으로 사망했다. 이는 두 차례 세계대전의 사망자 수를 초과한 것이다. 동시에 몇천 년을 이어온 ‘천인합일(天人合一)’의 문명이 형편없이 파괴됐다.

재난은 갈수록 심해졌다. 그러나 사물은 극한에 도달하면 반대 방향으로 나가기 마련이라 하늘은 또 생명을 건질 기회를 주셨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11월 17일 체코에서 발생한 ‘벨벳혁명’은 평화적인 방식으로 체코 공산정권을 뒤엎었다. 12월 25일, 루마니아의 공산 독재자 차우세스쿠가 국민들에게 사형 판결을 받았다.

1991년 8월 24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자신의 직무를 사직하고 공산당 중앙위원회를 해산시켰다. 같은 해 12월, 소련에 가입되어 있던 모든 공화국들이 분리되어 소련이 해체됐다.

2004년 11월 19일,《9평 공산당》이 세상에 나타나 중국 대지의 음침한 구름을 몰아내고 중국의 광대한 민중을 깨어나게 했다. 2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이미 1천4백만 명이 공개적으로 공산당, 공청단(공산주의 청년단), 소선대(소년선봉대)를 탈퇴하여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재앙 집단인 중공과 더 이상 같은 길을 가기를 거부했다...

최근에 발생한 일들은 공산사악주의운동이 역사의 무대에서 물러남을 알려준다. 아래에 몇 가지 사실들을 살펴보자.

2. 제정 러시아 마지막 황태후의 시신 러시아로 되돌아와

2006년 9월 3일~28일은 덴마크와 러시아의 역사를 새로 쓰는 날이 됐다. 러시아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스 2세의 어머니인 덴마크 출신의 마리아 표도로브나(Maria Fyodorovna Romanova, 1847-1928) 황태후가 28일 자신의 마지막 소원대로 제정 러시아의 수도였던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로마노프 왕실 묘역에 묻혔다. 그녀가 1919년 소련에 의해 추방된 지 87년이 지나서야 다시 러시아로 되돌아온 것이다.

원래 덴마크의 마리 공주였던 마리아 표도로브나 황태후는 원래 덴마크의 크리스찬 9세의 둘째 딸이었다. 크리스찬 9세는 아들 중 한 명이 나중에 그리스 국왕이 되었고 그의 손자 중에서 노르웨이 국왕이 나왔다. 또 세 딸은 영국 황후, 러시아 황후 밑 영국 캔터베리 공작부인이 되어 ‘유렵의 장인(丈人)’이란 아름다운 별명을 얻었다.

1918년 7월, 러시아 황제 니콜라스 2세의 온 가족들 즉, 황제, 황후, 황태자 및 4명의 공주들은 그들을 지키고 있던 소련 공산당원들에 의해 살해당했다. 그들의 시신은 유황과 휘발유를 발라 소각되었다. 유골은 시베리아의 에카체린부르크의 한 동굴에 묻혔다.

1919년 4월 소련이 흑해에 접근할 때 72세의 마리아 표도로브나 황태후는 자신의 친언니이자 영국 에드워드 7세의 황후인 알렉산드라 황태후의 도움으로 러시아를 빠져나갈 수 있었다.

2006년 9월 26일, 원래 덴마크 공주였던 마리아의 영구는 덴마크 왕실 묘지에서 140년 전 그녀가 러시아에 결혼하러 올 때 지났던 그 길을 따라 돌아와 남편 옆으로 이장되었다.

러시아의 마지막 황태후 마리아 표도로브나는 공산당의 박해를 받아 타지를 떠돌다 140년의 오랜 여행을 거친 끝에 드디어 소련이 멸망한 지 15년 만에 돌아올 수 있었다.

3. 중공이 제작한 소련 멸망 영화 해석

올해는 소련정권이 해체된 지 15주년이다. 중공 중앙 기율위원회 등에서는 합동으로 한 편의 ‘유비무환─소련이 망한 역사적 교훈’이란 ‘교육필름’을 제작했다. 최근 중공은 내부적으로 전국 현급 이상 당원 지도자들에게 이 영화를 보게 하여, 중공 당원들에게 “(사상에 있는) 부패와 변질을 방지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중공 당국은 끊임없이 공산당 멸망에 대한 경각성을 높여야 한다고 외쳐대고 있으며 “중공의 망당(亡黨) 위기가 가중되었다”라고 떠들고 있다. 이에 망당(亡黨)을 방지한다는 온갖 구실로 많은 공정들을 제출하고 있다.

외부에서는 이것을 “기술로 (중공의) 멸망을 방지하고 공리공론으로 당을 구하려 한다”라는 말로 총괄하고 있다. 이는 가면 갈수록 외부에서도 중공의 생존 위기를 더욱 똑똑히 보게 되었으며 마치 눈썹에 불이 붙은 것처럼 급박해진 것을 의미한다.

이번에 소위 “소련이 망한 역사적 교훈”이란 영화는 평론가들이 지적하듯이 “동료가 망했으니 이젠 내 차례다.”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멸망을 뻔히 알면서도 중공으로서는 어떻게 달리 취할 조치가 없다. 어떤 평론가는 중공의 멸망을 막는 유일한 길은 결국 소련과 다른 독재자들의 뒤를 따라 멸망하는 것뿐이라고 지적했다.

홍콩의 정치평론가들은 중공 정권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작동하는 것은 당 및 전체 관료들의 탐오와 부패의 사슬 때문이라고 본다. 이 사슬 안에서는 탐오와 부패만이 중공의 통치 기계를 운행하고 기름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권리와 돈’의 교환이 원활하지 못하거나 정지된다면 당의 기능도 정지 상태에 이르게 된다.

현실적으로 중공의 상황은 부패방지가 곧 당의 멸망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공산당이 어찌 망당의 생명줄인 탐오와 부패를 없앨 수 있겠는가? 탐오 부패로 생존하고 탐오부패를 당의 생명줄로 삼는 당이 탐오와 부패를 제거할 수 있단 말인가! 정말이지 가소로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대기원시보의 시리즈 사설 ‘9평 공산당’에서는 이렇게 제도화되고 사회화 된 사교(邪敎)의 발전 방향은 철저한 타락을 향해 나아갈 뿐이라고 지적했다. 왜냐하면 공산 사회는 권력이 고도로 집중되고 사회여론과 각종 감시 메커니즘이 말살되어 그 어떠한 힘도 공산당의 타락과 부패를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아주 똑똑히 보고 있다. ‘부패에 반대하면 당이 망하고 부패에 반대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것을. 그러나 공산당은 당의 멸망을 무릅쓰고 반부패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 부패에 반대하는 것은 다른 방법이 없을 때 부패분자 몇을 죽여 사람들에게 보여 주려는 것이다. 몇몇 부패분자의 생명으로 공산당의 수명을 몇 년 더 연장하려는 것이다. 공산 사교가 오늘까지 버텨온 유일한 목적은 바로 권력을 보존하고 당의 멸망을 방지하려는 것이다.”

마오쩌둥(모택동)은 일찍이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소련의 어제는 중국의 오늘이다"라고. 소련이 무너진 후 이 말은 외부에서 중공의 앞날을 평하는 예언으로 조롱받고 있다.

2004년 말, ‘9평 공산당’이 탈당조류를 일으킨 후 현재 이미 1400만 민중이 중공과 관련 조직에서 탈퇴하여 평화적이고 이성적으로 민심이 정신적인 각성을 지향하는 운동으로 찬양받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 현상을 소련이 해체되기 전과 비교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공산정권이 붕괴하기 직전에 대규모적인 탈당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소련이 해체되기 몇 년 전에 1500만 당원을 가진 소련 공산당은 이미 4분의 1에 달하는 당원이 탈당 혹은 태업에 들어가기 시작했고 공산 정권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옐친은 소련의 공개적인 비판을 받고 공산당 정치국에서 쫓겨났다.

원래 공산당 지도자였던 그가 공개적으로 공산당과 대립 면에 서서 공개적으로 반공 성명을 발표한 후 도리어 90% 민중들의 옹호를 받았으며 60% 이상의 표를 얻어 최초의 러시아 민선 대통령이 되었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 정치학 박사 리톈샤오(李天笑)가 몇 달 전에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대규모로 중국 공산당 및 관련조직을 탈퇴한 총 인원은 당시 1200만 명을 초과했으며 그 중 당원이 60%이상이었다. 즉 중공을 탈당한 사람만 이미 720만 명을 초과했으며 이는 중공에 등록된 총 당원수(7100만)의 10%에 달한다. 하지만 이 10%의 탈당인원도 아주 적게 잡은 수치이다.

중공 관방 출판물에서 소개한데 의하면 장기적으로 탈당하고 당비를 내지 않으며 장기적으로 조직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당원이 2000만 명 정도이다. 다른 한편, 도시와 농촌의 기층 당 조직의 85~95%는 마비상태에 처해 있으며, 종교를 믿는 당원이 2천만에 달한다.

만약 중공이 스스로 인정한 데 따르면 현재 정상적으로 활동하는 당원은 기존에 알려진 7,100만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탈당인원 720만 명을 전체 중공 당원의 10%로 보는 것은 아주 낮게 잡은 통계인 셈이다.

이 최저한도로 잡은 통계로 말하더라도 중국은 이미 급변이 발생하기 직전에 놓여있다. 동유럽 공산당이 해체될 때 소련 공산당의 탈당비율은 22%, 동독 공산당은 8.3%,헝가리는 중간쯤인 15%였다.

오늘 중공 전체 당원의 10%가 탈당한 비율은 가장 높은 소련과 가장 낮은 동독의 중간에 해당한다. 말하자면 역사의 거울에 비춰볼 때 중공의 해체는 지금 당장이라도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4. 워싱턴, 기념비 세워 공산 독재 희생자 추모

2006년 9월 27일 수요일, ‘공산주의의 박해로 수난을 당한 사람들의 기념비’가 워싱턴에서 정식으로 착공됐다. 전 공산주의 국가의 몇몇 대사들과 미 의회 의원들이 착공식 행사에 참석했다. 이 사건은 역사적인 의의가 있을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지금 현재로도 아주 큰 의의가 있다. 미 공화당 하원의원인 로라바처는 “이 기념비는 중국 인민들이 완전히 공산주의 전제 통치를 벗어나야만 진정으로 완성될 수 있다”고 말했다.

9월 27일은 묘하게도 미국 주재 체코 대사의 생일이었다. 그는 이것은 지금까지 자신이 받은 가장 좋은 생일선물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체코에서 공산당이 해체될 때 나는 29세였다. 나의 경험으로 볼 때 공산당이 말하는 평등은 진정한 평등이 아니다.

평등은 진정한 자유를 의미하며, 자신의 관점을 말할 수 있고 심지어 주류(主流)의 사상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진정으로 자신의 생활과 생명을 책임지고 국가와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아야만 진정한 평등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념비 설립을 추진해온 기금회 회장 에드워드는 기념비 건립을 위한 준비에만 15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은 아주 긴 과정이었고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우리는 수많은 곤란을 극복했다. 우리는 왜 이런 일을 하는가?

왜냐하면 지난 한 세기 동안 일억의 사람들이 공산당 통치에 의해 죽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사람들을 일깨워 주어야 한다. 이렇게 사망한 사람들은 우리 자유세계 사람들을 위해 희생된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끊임없이 사람들을 일깨워 주어야하는데, 지금 현재도 전 세계 인구의 1/5이에 해당하는 많은 사람들이 공산당 통치하에서 살고 있다.

중국, 쿠바, 베트남, 북한이 바로 그곳이다. 그러나 공산 체제는 그들이 선택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끊임없는 교육으로 사람들을 일깨워줘야 한다. 언젠가 일부분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능히 자신이 선택한 정부와 체제 아래서 생활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중국, 쿠바, 베트남과 북한 이런 국가에서는 여전히 이런 것들을 배척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미국 공화당 하원의원 로라바처는 착공식에서 “나는 공산주의 수난자(受難者) 기념비는 자유의 여신상을 모델로 하는 것이 제일 합당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아직도 공산주의 전제통치하에 있는 중국이란 나라가 있기 때문이다. 이 기념비는 중국인들이 완전히 공산주의 전제통치를 벗어나야 진정으로 완성할 수 있다”고 발언했다.

미국 주재 대만 경제문화처 대표는 “중국에서 공산당이 성립된 지 지금 이미 90년이 되었다. 이것은 전체 중국 역사와 중국 사회의 큰 재앙이다. 하루 빨리 중공이 이 세상에서 도태되기를 바란다. 내가 생각하건데 이것은 여러분들의 공통된 마음일 것이다.

이 기념비의 착공식은 아주 큰 의의가 있다. 왜냐하면 세계적으로 1억에 달하는 사람들이 공산당의 박해로 희생되었고 중공의 박해 하에서만 무려 8천만 명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5. 결론

얼마 전 《왕이(網易)》라는 중국 포털사이트에서 여론조사를 한데 의하면 “당신은 다음 생에 중국인이 되기를 원하는가?”라는 인터넷 투표에서 만여 명의 네티즌들이 투표에 참가했는데 투표 결과 60%를 넘는 사람들이 “다음 생에는 중국인으로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30%이상의 네티즌들이 중국에는 인간의 존엄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으며 그 외에 가난 등을 이유로 들었다고 한다.

이것은 분명 우리가 깊이 생각해봐야할 문제이다. 사실, 몇 천 년의 유구한 문명을 지닌 중국에 대해 우리는 깊은 감정을 갖고 있다. 고풍(古風)이 사라지고 도덕이 사라졌으며 백성들이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하소연 할 곳이 없기 때문에 민중들이 사는 낙이 없게 되었다. 때문에 중국인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잃어버렸는데 이 모든 것은 전부 사악한 공산당이 조성한 것이다.

길은 사실 우리 앞에 놓여있다.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를 탈퇴해야만 철저하게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다.

2006년 10월 1일

참고 자료:
http://epochtimes.com/gb/6/9/29/n1470612.htm
http://epochtimes.com/gb/6/9/28/n1469945.htm
http://epochtimes.com/gb/6/9/26/n1466521.htm
http://epochtimes.com/gb/6/9/24/n1464463.htm

글/ 저우정(周正, 정견망 시사평론가)
[이 게시물은 전체관리자님에 의해 2007-10-10 06:41:23 나도한마디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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