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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한국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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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패러다임 댓글 0건 조회 1,333회 작성일 06-10-30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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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한국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

 

                    임혁백(고려대 교수, 정치학)

기존의 발전모델과  발전모델의 위기 그리고 새로운 발전모델

  한국사회는 "비동시성의 동시성"의 시간에 살고 있다. 말하자면, 한국사회에는 전근대, 근대, 탈근대라는 비동시적인 시간이 동시에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세기에 한국사회는 근대를 완성하지 못한 채 새천년, 새세기에 들어섰던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냉전이 해체된 시점에서 한반도는 여전히 냉전의 고도로 남아있고, 남북분단이 지속되어 통일된 민족국가(국민국가)를 완성하지 못함으로써 근대화의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인 민주화, 산업화, 국민국가형성을 완결지우지 못하고 있다.

  지난 세기에 한국인들이 전쟁의 폐허와 분단의 상처를 딛고 일어서 선진국 "따라잡기" 근대화에 나선지 반세기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하는 압축적 근대화의 기적을 이룩하였으나 새세기에 들어선 시점에서도 근대화된 민족, 국가, 시민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는 "미완의 근대화"에 머물러 있는 것이 우리가 처한 상황이다.

  정치적으로는 불화, 불용, 불임의 3불정치가 지속되고 있고, 경제적으로는 공정성, 투명성, 자율성을 갖춘 시장경제질서가 확립되지 못하고 있으며, 사회적으로는 이웃 시민, 노사, 남녀, 세대, 지역 간에 기본적인 신뢰관계가 형성되지 않고 있고, 문화적으로는 개방적, 보편주의적, 포용적, 관용적인 시민의식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는 탈근대의 지표인 디지털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한국은 디지털 혁명이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나라 중의 하나이다. 초고속정보통신망의 완성, 인터넷, 이동전화 등의 영역에서 한국은 선두에 서 있다.

  우리가 처한 민족적 시간은 전근대적 관행의 잔재를 청산하면서, 근대시민, 민족, 국가를 완성하고, 21세기 탈근대사회, 지식정보화사회에 진입해야하는 3중적 과제를 동시에 진행해야하는 시간이다.

  과거의 발전모델은 신중상주의적인 후발산업화 모델이었다. 국가의 주도하에 모든 인적, 물적, 사회적 자원을 재벌중심의 산업화에 동원한 것이다. 과거의 발전모델은 정치적으로는 군부권위주의, 사회적으로는 반공주의에 기반한 규율사회, 국제적으로는 냉전체제하에서의 "자비로운 헤게모니"에 기반한 것이었다. 과거의 발전모델은 짧은 시간 안에 압축적 산업화를 달성하였고, 분배구조의 심각한 악화를 동반하지 않은 채 산업화의 목표를 달성함으로써 80년대 민주화의 물질적 기초를 쌓았다. 경제적으로 구발전모델은 기본적으로 국가가 시장을 주도하는 발전모델이었다. 국가는 시장실패를 교정하고 시장왜곡을 시정하는데 그치지 않고 시장을 이끌고, 규율하며, 지배하려한 "발전국가"였다. 발전국가는 자신이 설정한 산업화의 우선순위에 따라 시장적 합리성을 제약하기도 하였으나 사회주의 국가처럼 반시장적 국가는 아니었다. 발전국가는 사기업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세계시장의 경쟁에 노출되도록 강제하여 사기업의 기업가적 능력을 제고하도록 지원하였다. 사회주의 국가와는 달리 발전국가의 궁극적 목적은 국가에 의한 시장의 대체가 아니라 시장질서를 보완하고 완성하는 것이었다.

  한국의 발전국가는 재벌이라는 "경제챔피언"들을 선정하여 집중적으로 지원하였고. 국가의 지원을 받는 재벌들은 현재의 비교우위에 따라 이윤을 극대화하려하기 보다는 시장점유율을 확대하는 장기적인 이익추구를 우선시하였다. 이러한 발전국가가 성공적으로 산업화를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1) 사기업의 정치적 영향력을 차단하고 사기업을 국가가 의도하는 방향으로 추종 (followership)하도록 할 수 있는 자율성, 2) 금융자원의 통제를 통한 효과적 개입수단의 확보, 3)  '지원'과 실적의 교환을 통한 재벌에 대한 규율 확립 4) 냉전체제하에서 한국의 군사전략적 가치를 중시하는 미국이 제공한 경제적 시혜 (국가주의적 발전모델의 용인, 수출시장의 제공, 경제원조의 제공 등) 즉 "자비로운 헤게모니," 5) 분배욕구를 억제하고 생산주의 (productionism)를 사회에 강요할 수 있는 반공주의적 규율사회의 확립 등에 기인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구발전모델은 민주화, 세계화, 냉전체제해체에 의해 구조적 위기를 맞게되었다.  첫째, 민주화는 국가로 하여금 반공주의에 기반한 규율사회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하였고, 노동자를 비롯한 대중의 분배욕구를 무한정 억압할 수 없게 하였다. 둘째, 경제의 세계화는 국가에 의한 국내산업의 보호와 금융자본의 장악과 통제를 불가능하게 하였다. 대외개방으로 국가는 국내시장의 보호라는 당근을 통해 재벌을 기율할 수 있는 수단이 줄어들게 되었고, 금융자율화로 재벌을 규제해왔던 강력하고 효과적인 금융통제라는 수단을 상실하게 되었다. 금융자율화로 건전한 금융시장이 형성되기보다는 재벌과 금융의 담합체가  형성되었다. 발전국가의 통제의 이완으로 생긴 공간을 순수한 시장이 아니라 재벌이 대체하게 되었다. 민간주도 경제라는 이름하에 재벌의 자율성이 강화되었다. 셋째, 냉전체제의 해체로 한국의 군사전략적 가치가 하락하였다. 한국은 더 이상 냉전체제하에서 누렸던 '자비로운 헤게모니'의 시혜를 기대할 수 없게 되었고,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금융자본이 강요하는 규범 (워싱턴컨센서스, IMF Conditionalities)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구 발전모델이 생명을 다했다는 것을 보여준 극적인 사건이 1997년의 외환금융위기이다.

  새로운 발전모델은 민주적 시장경제 모델이어야 한다. 민주적 시장경제모델은 민주화된 국가, 시장친화적 경제사회, 시민친화적인 시장질서에 기반한다. 첫째, 국가의 낭비, 국가의 비효율, 국가의 불의를 제어하기 위한 국가의 민주화가 요구된다. 정부가 국가의 이익, 공동체의 이익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과 사적 동맹자의 이익을 위해서 개입할 때, 정경유착, 담합, 부정부패,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다. 정부로 하여금 불필요한 개입을 못하게 하고, 필요한 개입을 하게하며, 시민의 이익을 위해 개입하게 하기 위해서는 정부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필요하다.

   둘째, 시장과 민주주의가 동시에 발전할 수 있는 '시장친화적 경제사회"의 틀을 국가가 마련해주어야 한다. 국가는 재산권을 보호하고 계약을 강제하는 최소한의 기능을 수행해야함은 물론 공정한 시장경쟁의 규칙을 확립하고 강제해야한다. 국가는 기업들로 하여금 투명한 경영을 하도록 감시하는 동시에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와 조직의 출현을 방지해야한다.

  셋째, 시장질서가 확립된 뒤 국가가 해야할 일은 시장의 차기파괴적 효과를 치유할 수 있는 "시민친화적" (people-friendly) 시장질서를 확립하는 것이다. 국가는 시장경쟁으로 인한 사회적 응집력, 통합의 약화를 시정해야한다. 민주적 시장경제하에서 국가는 시민들로 하여금 시민권을 유효하게 행사할 수 있는 사회적, 경제적 조건을 창출해주어야 한다. 국가가 시장에서 낙오한 자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주고 시장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민주적 시장경제는 자유방임적 시장주의와 권위주의적 발전국가간의 이분법적 대립구도를 넘어서는 민주주의에 의해 감시되고 통제되는 시장경제이다.   

새로운 대안적 발전모델 확립을 위한 제도개혁의 핵심과제: 정치, 남북한관계, 국제관계를 중심으로

  정치개혁과제는 국가의 민주화이다. 구체적으로 한국 정치가 안고 있는 문제점인 三不政治 (不和, 不容, 不姙)의 극복과 청산에 초점이 맞추어져야할 것이다. 한국정치의 특징은 여야간의 대치, 대결정치의 일상화이다.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는 경쟁이나 여야관계는 민족공동체의 복지를 극대화하려는 우의에 찬 경쟁을 넘어서 서로를 타도해야할 대상으로 여기는 대결정치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분단과 전쟁, 불균등하고 배제적인 산업화가 나라를 지역, 이데올로기, 계급적으로 분열시킨 결과이다. 장기간에 걸친 냉전에 의해 고착화된 남북간의 분단구조가 국내 정치에 투영되어 나눔의 정치(politics of sharing) 보다는 '나누기의 정치' (politics of division)가 지배하게 되었고, 상생의 정치보다는 상극의 정치를 낳았다. 분단체제 하에서 흑백논리의 정치, 칼 슈미트 류의 '우리'와 적의 정치가 지배하였다. 타협과 협상보다는 배제, 반목, 대결의 정치가 지배하였다.

  한국 민주주의의 과제는 배제의 정치, 분단의 정치, 나누기의 정치를 청산하고 "나눔의 정치"를 복원하여야한다. 구발전모델은 배제적 근대화였다. 지역적으로는 호남을 배제시키고, 계급적으로는 노동자를 배제시켰으며, 민족적으로는 남북의 분단에 기초하고 있었다.    

  지역주의의 해결책은 지역은 통합되어야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해야한다는 사고에서부터 출발해야한다. 지금까지의 지역주의 해결책은 문화적 정체성을 확보하고 있는 지역을 인위적으로 중앙집권적으로 통합하려는 것이었다. 동진정책, 전국정당화, 지역통합 등은 대표적인 중앙집권적인 지역통합 접근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일 민족신화'에 기초한 지역통합이 아니라 다원주의에 기초한 지역공존이다. 중앙에 의한 지역의 지배가 아니라 지역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지역분권주의를 확립하고,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협의주의적인(conso ciational) 권력분점이 있어야한다. 지역이 서로 다를 수 있고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지역을 강제로 통합하려고 하기보다는 다양한 지역간의 평화적 공존을 모색하여야 한다.   

  첫째, 가능한 최대한으로 중앙정부의 권력을 지방으로 이전하여 지역분권주의를 실현해야한다. 둘째, 중앙정부 차원에서 협의주의적인 권력분점이 있어야한다. 인사와 예산배분에 있어서 비례주의 또는 등가주의를 적용하여 강자, 다수파, 승자의 '승자독식' (winner-takes-all)을 막고 약자, 소수파, 패자에게도 비례적으로 또는 과잉대표되는 방식으로 배분하는 방식을 채택해야한다. 셋째,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 (identity)을 인정해야한다.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획일화되고 '통일된' 단일 민족문화만을 고집한다면, 각 지역은 단일 민족문화에서 패권적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피나는 싸움을 벌일 것이고, 지역간의 경쟁은 격화될 것이다. 넷째,  지역정체성의 패권적 지위를 약화시켜야한다. 이를 위해서 한국인들은 다양한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정체성을 가져야할 것이다. 세계화의 시대는 네트워크의 시대이다. 세계화의 시대에 출현한 다양한 네트워크에 참여하려면 다양한 정체성을 보유해야한다. 세계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면서 동시에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도 지켜야한다. 민족내부적으로는 지역적 정체성을 가지는 동시에 직업적, 세대적, 성적, 계급적 정체성도 가져야하는 것이다. 다양한 복합적 정체성을 보유하고 있을 때 어느 특정 균열구조가 정치적 갈등을 좌지우지하지 못할 것이다. 그 결과 지역주의가 정치적 갈등을 조직하고 동원하는데 있어서 특권적 지위를 누리지 못할 것이고 그 결과 지역주의로 인한 불화와 반목이 약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지역균열이 다중적이고 복합적인 균열구조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게 되면 지역주의가 정치와 권력배분을 결정하지 못할 것이고 자연히 지역주의에 호소하고 지역주의를 동원하려는 정치적 운동도 약화될 것이다. 따라서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다중적 정체성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영남사람이라는 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나는 영남 사람인 동시에 여성론자이고, 정보화세대이며, 탈냉전 세대의 일원이라는 다양하고 다중적인 정체성을 갖고 있을 때, 단지 영남사람이라는 지역적 정체성에 근거해서 투표를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중적이고 복합적인 정체성을 갖고 있을 때 정치적 공간을 지배하는 담론구조가 다양화, 다원화, 다층화, 다중화될 것이고 지역주의 담론이 더 이상 정치적 담론의 장을 지배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복합적 정체성의 시대가 열리면 각 정치세력은 어느 한 균열구조를 이용하여 정치적 동원을 시도하기보다는 다양한 균열구조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자연히 다양한 정체성에 호소하는 정치세력들간에 경쟁하면서 공존하는 다원주의 정치가 일어날 것이다.

  다음으로 남북화합이 이루어져야한다. 그런데 반세기에 걸쳐 고착화된 분단의식, 분단사회, 분단체제는 남북지도자간의 정치적 합의에 의해 일순간에 해소되지 않는다. 따라서 남북평화체제가 구축되고 정착되었을 때를 대비하여 우리는 통일 이후 민족대화합과 통합을 가져다 줄 수 있는 통일한국의 헌정제도를 디자인해야할 필요가 있다.

  통일한국이 현재 남북한이 실시하고 있는 중앙집권적, 권력집중적, 단방주의적 헌정구조를 채택한다면 남북 민족화합과 통합은 어려울 것이다. 단방주의적 헌정구조하에서는 다수결주의가 적용될 것이고, 다수결주의하에서는 50%+1 만으로 승자독식 (winner takes all)이 가능해진다. 이 경우 다수파의 과잉대표현상은 물론 정치적, 경제적으로 우월한 다수파가 정치적 경제적으로 열등한 소수파집단의 요구를 억압할 수 있는 "억압에 의한 결정"에 의한 다수의 독재가 가능해진다. 그 결과 소수파의 시민권, 정치적 권리, 재산권, 계약의 자유, 종교적 권리가 침해되기 쉽다. 따라서 다수결주의는 지역주의와 같은 고착화된 균열구조에 의해 분열된 '다원사회'의 통합보다는 분열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통일한국에서 다수결에 의한 승자독식의 원칙이 적용될 경우 소수파인 북한주민들은 영원한 패자의 지위를 감수하면서 통일한국에 남기보다는 철수하려할 것이기 때문이다.

  통일한국은 남북간의 지역적 균열라인을 따라 다수파와 소수파가 고착화되는 다원사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소수파로 하여금 정치공동체에 계속 남을 수 있게 하는 비다수결적 민주주의를 제도화해야한다. 먼저 소수파인 북한주민의 권리를 보장, 보호하는 헌법적 보호장치를 마련해야할 것이고, 중앙집권적, 권력집중적 단방주의적 헌정구조를 분권적이고 권력분점적인 연방주의와 협의주의에 기초한 헌정구조로 바꾸어야한다.

  마지막으로, 생산적 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개혁이 필요하다. 민주화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정치인들은 정치력의 과잉, 국가경영능력의 빈곤을 드러내고 있다. 정치인들의 불화와 반목으로 아무 것도 생산해내지 못하는 不姙의 정치가 계속되고 있다. 생산적 정치의 확립을 위해서 먼저 국가 경영자들의 자의적 권력남용, 자원낭비, 사익추구를 방지하고 그들로 하여금 시민들의 복지를 극대화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 민주적 책임성 (democratic accountabil ity)의 확보가 필요하다.  

  현재 한국 민주주의가 마련하고 있는 책임성 확보 장치는 선거를 통한 수직적 책임성이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지속되고 있는 여야 정당의 이합집산, 여소야대로 인한 행정부와 의회의 분열적 대표, 정당연합 (공조)로 인해 국민들이 책임의 소재지를 확인하는 것이 어렵게 되었고 선거를 통한 책임성 추구가 어렵게되고 있다. 따라서 책임성 확보를 위해서 국가대표기구간에 상호감시를 통해 탈법적, 불법적, 태만적 행위를 통제할 수 있는 수평적 책임성이 강화되어야하고, 여야 정당, 정부와 독립적인 수평적 위임 책임성 기구 (institutions of horizontal mandated accountability)를 마련하는 제도적 혁신을 고안할 필요가 있다. 독립적인 위임 책임성기구는 특정한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대표들의 권력잠식 행위나 부정행위를 방지하고, 시정하고, 처벌하는 권한을 위임받고 있다는 점에서 "미래대응적" (proactive)이고 "지속적" (continuous)인 책임기구의 성격이 있다. 수평적 위임 책임성 확보 기구로는 정부 (행정, 입법, 사법)와 독립적인 선거자금 투명성 확보기관, 독립적인 회계감사기관, 독립적인 통계기관, 특별검사제, 반부패위원회, 인권위원회, 공영매체에 대한 감시기구, 독립적 재정감독기관, 옴부즈맨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수평적 책임성과 함께 정부, 정치인, 정당에 대한 시민사회의 직접적인 감시기제를 강화해야한다. 시민들은 4년이나 5년마다 치러지는 선거시에만 주권을 행사하는 소극적 시민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시민들이 언제라도 자신의 대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을 때 '불이야'라고 소리칠 수 있는 화재경보적 감시장치 (fire-alarm oversight)가 마련되어야한다.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도 시민들이 정치인들의 행동과 실적을 정확히 파악하고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어야한다. 정보공개법을 통해 시민들에게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시민교육을 통한 정보분석과 평가 능력을 키워주어야 한다.

서울과 지방간의 격차 확대로 인한 지방의 위기를 극복하고 지역발전을 위한 비전과 프로그램

  서울 또는 수도권과 지방간의 격차확대는 위험수위에 도달했다는데 대해 동의한다. 수도권은 11.8%의 면적에 인구의 45.6%, 생산의 45.9%, 제조업체의 55.5%, 서비스업의 46.3%, 대학교의 42.3%, 의사의 52.5%, 금융대출의 61.7%를 차지하고 있어 가히 "서울공화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도권 집중과 중앙집권은 과거의 발전모델의 산물이며 현재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발생시키는 주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중앙집권이 수도권의 집중을 초래하고 이는 지역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중앙에 걸린 권력이 너무 크기 때문에 각 지역은 중앙정부를 차지하기 위해 생사가 걸린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중앙정부에 걸린 몫이 상대적으로 작고, 가능한 모든 권력자원이 지방으로 이전된다면 각 지역은 중앙정치무대를 장악하기 위해 생사를 건 싸움을 하지 않을 것이고 지역은 화해와 공존의 길을 모색할 것이다.

  세계화의 시대는 세계화와 지방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글로칼리제이션(gloca lization: global + localization)의 시대인 것이다. 글로컬리제이션은 정치와 경제의 현지화를 촉진하고 있다. 국제화시대에 지방도시, 지방기업, 지방주민들은 반드시 수도에 있는 중앙정부나 대기업본사를 통해서 세계와 접촉해야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중앙정부와 대기업본사가 지방과 세계를 연결해주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지방정부, 지방기업, 지방주민이 스스로 세계와의 통로를 열어야 하게 된 것이다. 지방정부 또는 지방기업의 대표가 해외에 나가서 세계기업과 정부를 상대로 공장을 유치하고, 시장을 개척하며, 돈을 빌려와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현재 유럽인들은 영토국가가 자신들의 일상적인 문제를 해결해주기에는 너무 크며, 지구촌적인 문제를 해결해주기에는 너무 작다고 느끼고 있다. 유럽인들은 자신들을 이탈리아 국민, 네델란드 국민, 독일 국민, 스페인 국민보다는 플로렌스시민, 베니스시민, 함부르크 시민, 암스테르담 시민, 바르셀로나 시민으로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국경을 가로질러 형성되고 있는 리용-제네바-토리노 삼각지대는 대표적인 도시지역연합으로 현재 유럽에서 가장 활기찬 경제와 가장 높은 생활수준을 향유하고 있는 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므로 세계화 시대의 지방발전의 비전은 분권화 모델에서 찾아야한다. 중앙정부의 지방지배 또는 중앙집권주의는 지방의 발전을 저해해온 주요인이다. 첫째, 중앙정부가 지방을 지배함으로써 지반주민들의 문제를 주민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게 함으로써 주민자치라는 민주주의의 원리에 대한 중대한 침해를 초래하였다. 둘째, 중앙정부의 지방지배는 지방정치를 관료화시켜 지방문제의 해결을 위한 혁신적 아이디어를 봉쇄하였다. 마지막으로 중앙집권화의 정치는 지방의 국제 경쟁력을 약화시켰다. 모든 의사결정권이 중앙에 집중됨으로써 지방기업경영자들은 중앙정부와 통로를 열려하였지만 공장이 소재하고 있는 지역주민과 대화를 하려 하지 않았고, 지역주민 역시 모두 것을 중앙정부, 기업의 본사와 직접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다.    
   지방발전을 위해서 분권화 모델에 기초하여 중앙정부기관의 지방이전, 지역특성화를 위한 산업재배치, 금융, 교육, 연구기관의 지방이전이 이루어져야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가기관, 정부투자기관, 정부출연기관의 85% 이상 (중앙부처 100%)이 서울에 위치하고 있다. 이들 기관의 일부를 지방에 이전하면 공무원과 가족과 함께 이 기관들과 연계가 많은 기업과 이익집단을 지방으로 이전할 수 있는 유인을 제공할 것이다. 과거에는 교통과 통신의 미비로 중앙기관의 지방이전을 위한 기술적 문제가 있었으나 정보통신과 교통의 혁명적 발전으로 인해 기술적 문제가 해결되고 있다.

  또한 지방발전을 위해 각 지역은 비교우위에 입각하여 산업특성화를 추구해야한다. 모든 지역이 첨단정보단지를 만든다고 달려들면 지역간에 중복투자, 과잉경쟁이 발생하여 지방이 공멸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지역이 가지고 있는 비교우위에 따라 산업을 재배치하는 분업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를 들면 대구는 섬유, 디자인, 부산은 해운, 대전은 과학연구단지, 광주는 광산업을 특화하여 각 지역이 특정 산업분야에서 최고가 된다는 산업수도전략을 추구해야한다.

낡은 가치관과 새로운 가치관의 대립, 갈등. 지배적 가치관은 무엇이며, 대안적 발전모델 실현을 위한 새로운 가치관과 생활양식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은 무엇인가?

  과거의 지배적 가치관은 권위주의, 반공주의, 지역주의, 폐쇄적 민족주의로 특징 지워진다. 분단이 장기화되고 고착화되어 남북간에 체제우위 경쟁이 벌어지면서 국가권력을 절대화하는 권위주의가 정당화되었다. 국가는 북한이라는 가상적을 설정하여 국민의 에너지를 가상적과의 전쟁에 동원하였고 이를 위해 전 국민들로 하여금 반공주의를 내면화하는 사회화를 시도하였다. 남북간의 분단은 남한내부에 투영되어 동서분단을 초래하였다. 동서분단은 압축적 산업화를 위한 집적, 집중전략에 따른 지역불균등 산업화로 심화되었고, 민주화 이후 정치인들의 지역감정 동원으로 인해 더욱 악화되었다. 민주화 이후에도 지역주의와 색깔론은 구 기득권 정치인들이 단골로 동원하는 이데올로기적 호명이다. 그러면서도 대외적으로는 폐쇄적 민족주의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내 시장은 개방하지 않으면서 해외시장은 공격적으로 공략하였고 국내시장에서는 공정한 경쟁규칙과 규범을 수용하지 않으면서 세계로 진출하여 세계경영을 도모하는 일방적인 세계화를 추진하였다.

  그러나 민주화, 세계화, 지식정보화의 시대에 이러한 과거의 가치관이나 행동양식으로서는 우리의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다. 새로운 가치관은 다원주의와 열린 민족주의여야 한다. 아탈리(Jacques Atttali)는 21세기를 '레고문명' (civiLego)의 시대라고 하였다. 아탈리에 의하면, 세계화와 지식정보화로 특징지어지는 21세기는 인간들이 지난 5000년간의 정착생활을 청산하고 노트북과 핸드폰을 들고 정신없이 직업, 주거환경, 국경, 가정을 수시로 바꾸면서 이동하여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추구하는 신유목사회 (neo-nomadic society)가 될 것이고 신유목사회에서 신유목민들은 서로의 생활양식을 존중하면서 공존하여 각각의 문명요소를 조립하여 복합적 문화를 창출하는 레고문명의 시대를 열 것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가치관도 이와 같은 아딸리의 공식을 따라야 할 것이다. 한국인들은 국가, 지역, 계급, 세대, 성간의 다양한 정체성을 관용하고 인정할 뿐 아니라 서로의 생활양식과 문화를 존중하면서 공동으로 복합적인 한민족 문화를 끊임없이 조립해나가는 한국형 레고문화를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세계화의 시대는 네트워크의 시대이다. 세계화의 시대에 출현한 다양한 네트워크에 참여하려면 다양한 정체성을 보유해야한다. 세계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면서 동시에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도 지켜야한다. 민족내부적으로는 지역적 정체성을 가지는 동시에 직업적, 세대적, 성적, 계급적 정체성도 가져야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본다면, 세계화의 시대에 '나'는 세계시민인 동시에 한국인이고, 경상도 사람인 동시에 남성이고, 475세대이며, 교수이고 화이트칼라라는 복합적 정체성을 가져야하는 것이다.

   관용과 다원주의는 동전의 양면이다. 다원주의는 관용을 전제로 한다. 관용이 없는 다원주의는 허구이다. 다원주의는 다양성과 견해 차이가 개인, 사회, 국가를 풍성하게 한다는 것을 믿는다. 다원주의적 가치관은 정치적 영역 뿐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영역으로 확대되어야한다. 지역, 계층, 세대, 성간에 서로의 차이를 인정할 뿐 아니라 수용함으로써 경쟁하는 가운데 협력하는 것만이 정치적 정통성과 경제적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는 가치관이다.

  대외적으로는 열린 민족주의를 견지해야한다.  변화된 세계에 닫힌 민족주의로서는 대처할 수 없다. 닫힌 민족주의는 국가주도적 산업화시기에만 유효하였다. 그러나 닫힌 민족주의는 세계주의의 보편적 규범을 우리 민족이 내면화할 기회를 차단함으로써 국내 경제의 비효율성을 온존케 하였으며, 정치적 민주화를 지연시켰고, 한반도 주변국가들이 수용할 수 있는 평화적 통일한국을 준비하는데 장애요인으로 작용하였다. 폐쇄적 민족주의의 울타리 속에서 우리는 세계기준에 맞지 않는 제도와 관행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세계화로 인해 국경의 보호막이 사라지면서 우리의 뒤떨어진 제도와 관행은 외부에 노출되었고 세계화된 자본의 공격으로 국가적 위기를 맞았던 것이다.

  자유, 인권, 복지와 같은 인류가 추구해야할 보편적 가치가 사상된 왜곡된 '아사아적 가치'를 고수하면서 한국정치의 민주화를 기대할 수 없다. 공정한 경쟁, 투명경영, 책임경영 같은 시장경제의 보편적 원리를 수용하지 않고 가부장적 경영, 관치금융, 국가와 재벌간의 담합으로 특징지워지는 한국적 발전모델을 고수할 때 우리는 제2의 도약을 이룩할 수 없다. 노동자의 권리, 노동조건, 사회복지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향상시키지 않고서 대결적 노사관계를 협력적 노사관계로 전환시킬 수 없다. 배타적 민족이익을 주장하면서 주변국이 협력하는 평화통일 공식을 도출해 낼 수 없다. 우리는 열린 민족주의로 세계를 이끌어가는 보편적 가치인 자유, 인권, 정의, 평화, 효율을 수용하고 실현해야하며, 국제사회의 규범과 규칙을 따라야하고, 주변국과 선린관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평화통일을 준비하여야한다. 우리 문화의 민족적 특수성을 강조하기보다는 우리 문화가 지구적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도록 우리 문화의 질을 높여야한다. 우리 문화의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해 먼저 배타적 단일민족의 신화를 깨야한다. 만일 우리가 단일 민족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이질적인 왜래문화를 거부한다면 새로운 기술, 새로운 사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할 것이다.

한국사회의 대안적 발전모델을 주도할 주체는 누구인가,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

  이러한 대안적 발전모델이 탈냉전, 민주주의, 지식정보화, 열린 민족주의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이를 주도할 주체는 자연스럽게 도출될 수 있다.

  첫째, 반세기에 걸친 남북분단과 한반도 냉전을 해체할 수 있는 주체가 요구된다. 독일과는 달리 우리의 분단은 한국전쟁이라는 유혈적인 내전을 통해 심화되고 고착되었기 때문에 남북간의 화해와 협력이 열린다 해서 쉽사리 해소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한반도의 냉전을 해체하고 한국 내부의 분단을 해결할 수 있는 주체는 유혈적인 내전의 후유증을 앓고 있지 않은 전후세대가 될 수밖에 없다. (내전의 상흔은 한 세대가 지나야 잊혀질 수 있다고 한다.)

  둘째, 21세기 한국 민주화를 주도할 세력이 요구된다. 21세기 한국민주화를 이끌 주도세력은 반드시 70년대와 80년대의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던 세력으로부터 나와야한다는 당위성은 없다. 70년대와 80년대의 민주화운동은 기본적으로 권위주의 체제의 해체와 퇴장에 초점을 맞추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민주화 이후의 한국사회 건설에 관한 구체적인 의제, 비전, 프로그램을 개발할 여유가 없었다. 물론 70년대와 80년의 민주화 운동세력이 어느 세력보다도 도덕적인 우위에 있는 것은 틀림없으나, '권위주의의 파괴" 경쟁에서 "민주주의의 건설"의 경쟁으로 민주화의 지형이 바뀐 시점에서 필요한 리더쉽은 민주주의로의 전환에 능한 리더쉽보다는 민주주의의 공고화에 능한 리더쉽이다.

  셋째, 지식정보화를 이끌 수 있는 주체가 요구된다. 산업화 시대의 정치가  지식정보화 시대의 정치로 변모하게 되면서 정치를 이끌어 가는 주요 행위자의 교체가 일어날 것이다. 산업화 시대의 정치의 주역은 계급이었다. 산업화 시대의 부와 소득을 결정하는 것은 자본 (생산수단)과 노동이었다.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와 노동력만을 갖고 있는 노동자간에 기본적인 갈등구조가 형성되고, 이러한 계급갈등을 해결, 처리하는 것이 정치의 주목적이었다. 자연히 정치조직은 계급균열 라인을 따라 형성, 조직되었다. 그런데 디지털 사회에서는 부와 소득을 결정하는 기본 인자가 생산수단과 노동이 아니라 지식과 정보이다. 지식과 정보의 격차가 소득의 차이를 만들어내면서 지식, 정보 전문가인 '골드 칼라' (gold collar)가 새로운 지배계급으로 부상하고 있는 반면, '정보 이용능력' (information literacy)이 없는 디지털 빈곤계급도 양산되어 소위 '정보양극화의 사회' (digital divide)가 출현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는 자본과 노동을 따라 형성되었던 전통적인 계급균열라인이 약해지는 대신 지식과 정보를 소유, 이용하는데 능한 디지털 세대와 그렇지 못한 세대간의 균열라인이 지배적 균열라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앞으로 정치인과 정당은 표를 구하기 위해서 전통적인 계급을 조직하기보다는 탈산업사회적인 지식정보화사회 내에서 친 디지털 행위자와 반 디지털 행위자를 조직하게 될 것이다. 디지털 통계를 보면, 디지털 격차는 세대간에 가장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10대와 20대가 전 네티즌의 2/3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성별 정보격차도 뚜렷하나 여성 네티즌이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에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성별 디지털 격차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지식정보화를 주도할 세력이 압축적 산업화 시대의 주역인 재벌과 경제주역 자리의 교체를 이룩할 것이다.

  새로운 발전모델을 주도할 주체세력은 탈냉전, 민주화, 지식정보화을 주도하는 세력이 될 것이다. 그들은 동질적인 집단은 아니다. 따라서 주체세력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이들간의 광범위한 정치연합이 형성되어야할 것이다. 그람시적인 용어를 빌린다면 '새로운 역사블럭' (New Historical Bloc)을 형성해야하는 것이다. 새로운 역사블럭은 탈냉전세력의 민족성, 민주화세력의 도덕성, 지식정보화 세력의 전문성과 효율성이 결합된 계급, 직업, 성, 지역, 세대를 '가로지르는 연합' (cross-cutting coalition)이 되어야할 것이다. [이 게시물은 전체관리자님에 의해 2007-10-10 06:41:23 나도한마디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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