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운하입국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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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맹바기 댓글 0건 조회 1,440회 작성일 06-11-20 10:08본문
이상돈의 보수지성의소리] 황당한 ‘운하입국론(運河立國論)’
"대한민국의 명운(命運)이 풍전등화 같은 처지인데, 웬 운하타령인가"
이상돈 교수
▲구설수 오른 이명박 전 시장
이명박씨가 전국을 잇는 운하건설을 자신의 대선 공약 1호로 내세우는 모양이다. 전국을 거미줄 같은 운하로 이어서 경제를 일으키겠다는 것이다.
´북한에서 핵실험을 한다´,´한미 군사동맹이 붕괴된다´등등으로 나라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는데,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겨우 내세우고 있는 것이 운하건설이니 한심하다.
이명박씨가 어떻게 해서 ‘운하입국(運河立國)’을 결심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집착은 대단해 보인다.
경인(京仁)운하 논쟁
이명박씨의 야심에 찬 운하입국 계획이 아니라도 우리나라는 10년째 운하건설을 두고 논쟁을 해 오고 있다. 바로 경인운하 건설 문제이다.
김영삼 정부는 이런저런 국책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경인운하 건설이었다. 한강수면보다 낮은 탓에 비만 오면 범람해서 주변지역을 침수시키는 굴포천에 방수로(防水路) 건설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이를 보다 확장해서 아예 운하로 만들자는 계획이었다. 경인운하가 완성되면 마포에서 바지로 화물을 싣고 인천항으로 나가서 정박중인 화물선에 옮겨 실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경인운하가 사업성이 없다고 보았다. 화물차가 인천항이나 평택항에 가는 것이 훨씬 편리하고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국민세금을 퍼마시는‘흰색 코끼리(White Elephant)’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1997년 경제위기가 발생했고, 새로 들어선 김대중 정부는 대형 국책사업을 재검토하게 됐고, 자연히 경인운하는 도마 위에 올랐다.
2003년 9월 정부는 폭 40미터 규모의 방수로는 그대로 건설하고 경인운하 사업을 시행할 지 여부는 나중에 결정하기로 했다. 방수로 공사는 2005년부터 시작해서 현재 상당한 진척을 보이고 있으며, 만일에 경인운하가 사업성이 있다는 판단이 서면 방수로의 폭을 넓혀서 운하로 건설할 것이라 한다.
현재 공사중인 방수로 사업은 길이가 14Km, 폭 80미터로 총건설비가 5500억 원 규모이다. 침수피해를 막고 제방도로를 건설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업성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방수로를 운하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폭이 최소한 두 배가 돼야 하고 갑문과 부두를 건설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엄청나게 늘어난다.
문제는 ´경인운하를 이용할 충분한 화물이 있냐´하는 것이다.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화물차가 그대로 인천항으로 가는 것이 훨씬 편리하고 경제적임은 누구나 쉽게 짐작할 것이다.
운하는 역사의 유물(遺物)
운하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은 수에즈 운하와 파나마 운하이지만 운하의 역사는 오래 전으로 거슬러 간다. 고대부터 인류는 물길을 파서 관개를 했다. 그러다가 물길을 보다 넓고 깊게 만들어서 배를 띄우게 됐으니 그것이 운하이다. 중국의 베이징과 항쪼우를 잇는 대운하는 서기 5세기에 시작해서 20세기 초에 완공됐다. 12세기에 이태리 반도의 베네치아는 바다에 면한 늪지대에 운하를 파서 대단한 도시국가를 건설했다.
1770년대 들어 영국은 하천을 잇는 운하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산업혁명을 시작한 영국은 육상운송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1830년 들어 운하건설 붐은 수그러졌는데, 그것은 철도가 새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1850년대 들어 운하로 운송되는 물량은 대폭 감소했고, 1920년대 들어선 작은 운하들이 방치되기 시작했다.
오늘날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 운하는 손꼽을 정도이고, 그 대신 운하 주변의 전원풍경을 즐기려는 사람들을 상대로 한 관광 바지 운항으로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땅덩어리가 큰 미국은 건국 초부터 대서양과 내륙을 잇는 운하를 건설할 필요를 느꼈다. 1825년에 허드슨 강과 에리호(湖)를 잇는 에리 운하가 완공되어 선박이 대서양과 5대호 사이를 항해할 수 있게 됐다. 19세기 중반부터 하천과 연결하기 위한 크고 작은 운하가 많이 건설됐다.
그러나 운하 건설 붐은 19세기 말부터 사실상 중단되어 버렸다. 보다 빠르고 효율적인 철도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20세기 들어 많은 운하는 사업성을 상실하고 포기되거나 방치되었다. 그중 몇몇 운하는 관광보트가 다니는 운하로 변신하기도 했다.
정리할 것 같으면, 운송수단으로서 운하는 철도의 등장과 더불어 역사의 유물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현재 사용중인 운하도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철도가 등장하기 전에 건설한 것들이다. 또 한가지 주목할 것은 도로와 자동차의 등장과 더불어 철도가 경쟁력을 상실했다는 점이다. 오늘날 운행 중인 철도는 대부분 고속도로와 자동차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에 건설된 것들이다.
경부운하(京釜運河)?
이명박씨가 구상하는 경부운하는 낙동강과 남한강을 연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경부 상주와 문경, 그리고 충북 충주를 물길로 연결해야 한다. 그 사이는 험준한 산이 자리잡고 있어 과연 배가 지나갈 물길을 건설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상류이기 때문에 충주호와 안동호의 물을 끌어오지 않는 한 배를 띄울 만한 물이 있을지도 의심스럽다.
단순히 물을 공급하기 위한 도수로(導水路)가 아니고 배가 지나가기 위한 운하를 건설하기 위해선 곳곳에 갑문(閘門)을 설치해야 하니 건설비가 엄청날 것이다. 무엇보다 그런 험산지형(險山地形)에 운하를 건설하겠다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
운하를 건설하겠다는 경기도 여주에서 충주, 문경, 상주를 거쳐 김천까지는 이미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시원하게 개통되어 있다. 전국이 고속도로로 거미줄 같이 연결되어 있어 부산항에 내린 컨테이너가 반나절이면 전국 어디에나 도착하는 것인데, 운하를 왜 건설하겠다는지 황당할 따름이다.
운하는 철도 시대가 도래하자 쇠퇴했고, 철도는 자동차 시대가 도래하자 쇠퇴했음은 역사가 잘 보여 주지 않는가. 무엇보다 지금은 대한민국의 명운(命運)이 풍전등화(風前燈火) 같은 처지인데, 난데없이 웬 운하타령인가.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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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명운(命運)이 풍전등화 같은 처지인데, 웬 운하타령인가"
이상돈 교수
▲구설수 오른 이명박 전 시장
이명박씨가 전국을 잇는 운하건설을 자신의 대선 공약 1호로 내세우는 모양이다. 전국을 거미줄 같은 운하로 이어서 경제를 일으키겠다는 것이다.
´북한에서 핵실험을 한다´,´한미 군사동맹이 붕괴된다´등등으로 나라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는데,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겨우 내세우고 있는 것이 운하건설이니 한심하다.
이명박씨가 어떻게 해서 ‘운하입국(運河立國)’을 결심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집착은 대단해 보인다.
경인(京仁)운하 논쟁
이명박씨의 야심에 찬 운하입국 계획이 아니라도 우리나라는 10년째 운하건설을 두고 논쟁을 해 오고 있다. 바로 경인운하 건설 문제이다.
김영삼 정부는 이런저런 국책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경인운하 건설이었다. 한강수면보다 낮은 탓에 비만 오면 범람해서 주변지역을 침수시키는 굴포천에 방수로(防水路) 건설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이를 보다 확장해서 아예 운하로 만들자는 계획이었다. 경인운하가 완성되면 마포에서 바지로 화물을 싣고 인천항으로 나가서 정박중인 화물선에 옮겨 실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경인운하가 사업성이 없다고 보았다. 화물차가 인천항이나 평택항에 가는 것이 훨씬 편리하고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국민세금을 퍼마시는‘흰색 코끼리(White Elephant)’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1997년 경제위기가 발생했고, 새로 들어선 김대중 정부는 대형 국책사업을 재검토하게 됐고, 자연히 경인운하는 도마 위에 올랐다.
2003년 9월 정부는 폭 40미터 규모의 방수로는 그대로 건설하고 경인운하 사업을 시행할 지 여부는 나중에 결정하기로 했다. 방수로 공사는 2005년부터 시작해서 현재 상당한 진척을 보이고 있으며, 만일에 경인운하가 사업성이 있다는 판단이 서면 방수로의 폭을 넓혀서 운하로 건설할 것이라 한다.
현재 공사중인 방수로 사업은 길이가 14Km, 폭 80미터로 총건설비가 5500억 원 규모이다. 침수피해를 막고 제방도로를 건설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업성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방수로를 운하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폭이 최소한 두 배가 돼야 하고 갑문과 부두를 건설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엄청나게 늘어난다.
문제는 ´경인운하를 이용할 충분한 화물이 있냐´하는 것이다.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화물차가 그대로 인천항으로 가는 것이 훨씬 편리하고 경제적임은 누구나 쉽게 짐작할 것이다.
운하는 역사의 유물(遺物)
운하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은 수에즈 운하와 파나마 운하이지만 운하의 역사는 오래 전으로 거슬러 간다. 고대부터 인류는 물길을 파서 관개를 했다. 그러다가 물길을 보다 넓고 깊게 만들어서 배를 띄우게 됐으니 그것이 운하이다. 중국의 베이징과 항쪼우를 잇는 대운하는 서기 5세기에 시작해서 20세기 초에 완공됐다. 12세기에 이태리 반도의 베네치아는 바다에 면한 늪지대에 운하를 파서 대단한 도시국가를 건설했다.
1770년대 들어 영국은 하천을 잇는 운하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산업혁명을 시작한 영국은 육상운송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1830년 들어 운하건설 붐은 수그러졌는데, 그것은 철도가 새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1850년대 들어 운하로 운송되는 물량은 대폭 감소했고, 1920년대 들어선 작은 운하들이 방치되기 시작했다.
오늘날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 운하는 손꼽을 정도이고, 그 대신 운하 주변의 전원풍경을 즐기려는 사람들을 상대로 한 관광 바지 운항으로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땅덩어리가 큰 미국은 건국 초부터 대서양과 내륙을 잇는 운하를 건설할 필요를 느꼈다. 1825년에 허드슨 강과 에리호(湖)를 잇는 에리 운하가 완공되어 선박이 대서양과 5대호 사이를 항해할 수 있게 됐다. 19세기 중반부터 하천과 연결하기 위한 크고 작은 운하가 많이 건설됐다.
그러나 운하 건설 붐은 19세기 말부터 사실상 중단되어 버렸다. 보다 빠르고 효율적인 철도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20세기 들어 많은 운하는 사업성을 상실하고 포기되거나 방치되었다. 그중 몇몇 운하는 관광보트가 다니는 운하로 변신하기도 했다.
정리할 것 같으면, 운송수단으로서 운하는 철도의 등장과 더불어 역사의 유물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현재 사용중인 운하도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철도가 등장하기 전에 건설한 것들이다. 또 한가지 주목할 것은 도로와 자동차의 등장과 더불어 철도가 경쟁력을 상실했다는 점이다. 오늘날 운행 중인 철도는 대부분 고속도로와 자동차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에 건설된 것들이다.
경부운하(京釜運河)?
이명박씨가 구상하는 경부운하는 낙동강과 남한강을 연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경부 상주와 문경, 그리고 충북 충주를 물길로 연결해야 한다. 그 사이는 험준한 산이 자리잡고 있어 과연 배가 지나갈 물길을 건설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상류이기 때문에 충주호와 안동호의 물을 끌어오지 않는 한 배를 띄울 만한 물이 있을지도 의심스럽다.
단순히 물을 공급하기 위한 도수로(導水路)가 아니고 배가 지나가기 위한 운하를 건설하기 위해선 곳곳에 갑문(閘門)을 설치해야 하니 건설비가 엄청날 것이다. 무엇보다 그런 험산지형(險山地形)에 운하를 건설하겠다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
운하를 건설하겠다는 경기도 여주에서 충주, 문경, 상주를 거쳐 김천까지는 이미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시원하게 개통되어 있다. 전국이 고속도로로 거미줄 같이 연결되어 있어 부산항에 내린 컨테이너가 반나절이면 전국 어디에나 도착하는 것인데, 운하를 왜 건설하겠다는지 황당할 따름이다.
운하는 철도 시대가 도래하자 쇠퇴했고, 철도는 자동차 시대가 도래하자 쇠퇴했음은 역사가 잘 보여 주지 않는가. 무엇보다 지금은 대한민국의 명운(命運)이 풍전등화(風前燈火) 같은 처지인데, 난데없이 웬 운하타령인가.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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