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의 고공 행진이 계속되고 있다. 배럴 당 70달러를 넘은 데 이어 100달러를 넘을 것이라는 예상까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1970년대 양차에 걸친 석유 파동 당시의 유가를 현재 물가 수준에 맞춰 환산하면 80~90달러 수준 정도라는 것을 염두에 두면 제3의 '오일 쇼크'가 닥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은 수요 증가와 중동을 비롯한 원유 생산국의 불안정에서 기인한 일시적인 현상인가? 한국 정부를 비롯한 대다수 주류 에너지 관련자들은 이런 견해를 지지한다. 그러나 수십 년 전부터 '석유 시대의 종말'을 경고해 왔던 일련의 '음울한 예언가'들의 견해는 시간이 지날수록 설득력을 얻고 있다. 최근 번역된 리처드 하인버그의 책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이제 <파티는 끝났다>(신현승 옮김, 시공사 펴냄).
석유 생산 정점, 10년 안에 찾아와 2003년 초판에 이어 2005년 개정판을 낸 저자는 수십 년간 계속된 '석유 시대의 종말'에 대한 폭넓은 논쟁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특히 과연 석유 시대가 종말을 고할 것인가를 묻고 있는 제3장은 꼼꼼히 읽어볼 만하다. 낙관론자와 비관론자의 견해를 꼼꼼하게 검토한 저자는 안타깝게도 비관론자의 손을 들어준다. "개인적으로 나는 2006년에서 2015년 사이에 언젠가 전 세계 석유 생산의 정점에 도달한다는 메시지가 옳다고 생각한다."
좀 더 눈여겨봐야 할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비관론자의 대열에 참여하는 이른바 주류라고 불릴 법한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장 두드러진 예는 바로 미국 정부의 입장이다. 미국의 에너지국은 2004년 3월 전 세계 석유 생산이 감소하기 시작할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해 눈길을 끌었다. 이 미국 에너지국의 보고서는 혹시 과거 환경단체의 그것이 아닌지 헛갈릴 정도다.
"현재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은 석유 발견 속도보다 세 배나 빠른 속도로 고갈되고 있다. (…) 조만간 석유 생산이 정점에 도달하는지 여부는 시급한 문제다. (…) 전 세계 석유 생산이 정점에 도달하는 시기에 대해 일치된 합의가 존재하진 않지만 (여러 가지 예상을 종합해 볼 때) 2020년을 넘기지 않는다. (…) 국가는 당장 전 세계 석유 생산 정점에 대한 대응을 시작하여 경제와 국가 안보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상쇄해야 한다." 좀 더 극적인 예도 있다. 2004년 대표적인 석유 메이저 '셸'은 9주 동안 세 차례에 걸쳐 가채 매장량 감소를 발표해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셸은 총 매장량의 20% 감소를 시인했고 이 기업의 주가는 급격히 하락했다. 그러나 이 발표의 진짜 의미는 따로 있다. 셸의 충격적인 발표는 그 동안 석유 수출국과 석유 메이저들이 '기술의 발전으로 석유 생산이 늘고 있다'며 발표했던 석유 매장량이 크게 부풀려졌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에너지 낙관론, '근거 없는 희망'에 불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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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티는 끝났다>(리처드 하인버그 지음, 신현승 옮김, 시공사, 2006). ⓒ프레시안 |
여전히 낙관론자들이 주류다. 그들은 '오일 셰일(oil shale)'이라고 불리는 유기 물질을 포함한 암석에서 5000년 동안 사용 가능한 에너지원을 획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원자력을 옹호하는 이들도 가세한다. 그들은 석유 시대가 종말을 고하더라도 인류를 '영원한 번영'으로 이끄는 원자력이 있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주장 역시 '근거 없는' 주관적 희망에 불과함을 논증하고 있다.
'오일 셰일'을 개발하려는 시도는 9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한 세기에 가까운 기라성 같은 석유 메이저들의 시도는 모두 실패로 끝났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개발 과정에 막대한 에너지가 투여되고 그 부산물로 심각한 폐기물 처리 문제가 대두된다는 사실이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막대한 석유와 견주어 '오일 셰일'을 통해 충분한 양의 석유를 생산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다면 원자력은 어떨까? 흔히 원자력은 '값이 싸다'고 오해하고 있지만 원자로 폐기와 폐기물 저장을 계산에 넣으면 실제로는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당장 한국만 하더라도 중·저준위 폐기물 처분장 부지를 받아주는 조건으로만 3000억 원의 보상금이 경주시에 돌아갔다. 이밖에도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에너지의 옹호자들은 '원자력은 이산화탄소(CO₂)를 전혀 배출하지 않아 청정하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이것은 원자로 연쇄 반응 자체가 CO₂를 생산하지 않는 점에서만 사실이다. 우라늄 광물을 채굴하여 정제한 뒤 핵분열을 일으키도록 농축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오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만약 모든 연료의 순환 과정을 계산에 넣는다면 원자력은 (태양광, 풍력 등의) 재생 가능 에너지원보다 몇 배나 많은 CO₂를 배출할 것이다." (실제로 이런 사정 탓에 기후변화협약 교토의정서는 원자력 에너지를 '청정에너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석유 시대의 종말…산업사회의 재설계만이 살 길 물론 이 책은 태양광, 풍력, 바이오디젤 등 재생 가능 에너지를 확대하는 것을 유력한 대안으로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진짜 주장은 그것을 넘어선다. 과연 태양광, 풍력, 바이오디젤 등을 이용해 인류는 20세기에 그랬던 것처럼 파티를 계속할 수 있을까? 저자는 부정적이다. "이런 자원들은 현재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각종 운송과 식품과 주거 기반시설을 떠받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광범위한 변천이 필수적이다. 산업사회의 거의 전면적인 재설계를 수반해야 한다."
도대체 석유가 없어진다고 해서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감이 안 오는 이들은 이 책의 6장을 꼭 읽어봐야 한다. 개인, 공동체, 국가, 세계 차원에서 도대체 어떤 변화가 필수적으로 닥치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가 구체적으로 제시돼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충고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지금으로부터 1세기 뒤에는 지구상에서 오늘날보다 더 적은 인구가 1인당 더 적은 양의 에너지, 그것도 모두 재생 가능 자원을 사용하면서 살 것이다."
한 가지만 소개하자. 석유 시대가 종말을 고하면 더 이상 지금처럼 먹을거리를 처리할 수 없다. 장거리 수송에 의존하는 지금의 먹을거리 공급 체계가 버텨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위기의 모습을 우리는 1990년대 쿠바에서 목격했다. 그렇다면 자연히 먹을거리를 지역공동체가 공급할 방도를 궁리할 수밖에 없다. 쿠바는 공동체 텃밭을 활용하는 것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버클리 시는 이런 점을 자각한 선구적인 도시 가운데 하나다. 2001년부터 버클리 시는 새로운 먹을거리 공급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01년에 버클리 시 의회를 통과한 '버클리 식품 및 영양 법안'은 이 새로운 먹을거리 공급 체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지역 경제를 육성하며 버클리의 모든 시민이 건전하고 저렴하며 문화적으로 적합한 식품을 언제든지 구입할 수 있도록 하는 지속 가능한 지역 농업에 기반을 둔다."
흥청대다 함께 몰락할 것인가? 이 책의 초판이 쓰인 2003년 당시 저자(54세)는 세상을 움직이는 중년의 나이에 이른 산업화된 국가의 동 세대들에게 호소하는 것으로 책을 맺었다. 2년이 지난 후 개정판에서 저자는 "현재의 정치적 상황은 더욱 암울해 보인다"고 토로하고 있다. 저자의 호소에 우리는 답할 준비가 돼 있는가?
"중년의 나이에 이른 우리 세대들은 역사상 가장 격정적인 시대를 살았다. 설령 빠른 변화의 압박과 오염과 현대 생활의 경제적 경쟁으로 고통을 받았다 할지라도 우리는 제멋대로 쓸 수 있는 막대한 에너지로부터 혜택을 받았다. 산업화된 국가에서 성장한 우리들은 대부분 배고픈 시절을 겪지 않고 (…) 생활했다.
(…) 이런 삶은 아주 멋진 파티였다. 하지만 뭔가를 많이 받은 사람들은 많은 것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일단 선택을 알고 있다면 결정은 우리의 몫이다. 비참한 종말이 올 때까지 흥청대며 파티를 즐기다 나머지 다른 세상 사람들을 우리와 함께 몰락의 구렁텅이로 빠뜨릴 것인가? 아니면 파티가 끝났음을 인정하고 뒤처리를 깨끗이 한 뒤 우리 다음에 찾아올 이들을 위해 길을 열어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