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늘고 길게 살자] 39세 동갑 친구 '인생 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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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공무원만세 댓글 0건 조회 3,645회 작성일 06-07-24 10:40본문
[가늘고 길게 살자] 39세 동갑 친구 '인생 희비'
공무원이나 교사가 되기 위해 주경야독하는 직장인들의 모습은 이제 흔한 광경이 됐다. '공시족(公試族)', '공시폐인', '공시낭인'이라는 신조어도 유행하고 있다. 공직사회에도 성과급제, 교사평가제 등 민간부문의 경쟁방식이 조금씩 도입되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철밥통'이라는 인식이 강한 게 현실이다.
한국일보 기획취재팀은 고향 친구인 30대 후반의 대기업 과장 박형식(39ㆍ가명)씨와 서울조달청 6급 공무원 안태석(39)씨의 인생항로를 들여다봤다. 안씨는 지방 국립대(경상대)를 나와 1994년 경기도 7급 공채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박씨는 서울의 모 사립대 공대를 졸업 한 뒤 95년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연구원으로 입사했다. 박씨의 부인은 민간기업에 다니다 외환위기 때 퇴직했고, 안씨의 부인은 현재 7급 공무원이다. 이들은 모두 같은 또래의 자녀 2명씩을 두고 있다.
비바람 몰아쳐도 순항하는 '6급 공무원'
안씨는 요즘 7급 공무원시험 경쟁률이 평균 100대1을 웃돈다는 소식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자신이 지원할 때만 해도 학점이 나쁘거나 고시공부에 부담을 갖던 축이나 보던 인기 없는 시험이었기 때문이다. 그도 행정고시를 준비하다 넉넉치 않은 가정형편 때문에 7급으로 선회한 터였다. 94년 경기도 지방직 7급 경쟁률이 17대1이었으니, 10년 새 경쟁률이 5~6배나 뛰어오른 셈이다.
안씨는 이 같은 세태 변화에 대해, "7ㆍ9급 공무원은 아직까지 정년 보장, 경력개발 기회 부여 등 혜택이 많고 노후 걱정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인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의 정년은 57~60세이다. 이제 11살, 8살인 자녀들이 결혼 적령기가 될 때까지 직장을 다닐 수 있다. 만일 60세에 5급으로 퇴직하면 월 220만원의 공무원 연금을 탄다. 그는 현재 서강대 경제대학원에 다니며 경력개발에도 힘을 쏟고 있다. 물론 학비는 전액 국고에서 지원 받는다. 굳이 단점을 꼽자면 연봉이 3,300만원으로 친구인 박씨보다 20% 가량 적은 편이다. 하지만 맞벌이를 하고 있어 부인 연봉을 합치면 연간 가계소득이 6,000만원으로 박씨 가정보다 훨씬 많다.
그가 공무원으로서 느끼는 가장 큰 매력은 외환위기와 같은 외부 충격파에도 끄덕 없는 '고용 안정성'이다. 안씨 부부는 모두 공무원이다 보니 외환위기 당시에도 구조조정의 무풍지대에 머물 수 있었다. 반면 대기업과 금융기관에 들어간 학교 동기들은 사회생활 2~3년차의 초년병이었는데도, 구조조정의 광풍에 휩쓸려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그렇다고 안씨가 처음부터 탄탄대로였던 건 아니다. 96년 결혼할 당시만 해도 대출 1,500만원을 끼고 18평 아파트 전세를 얻을 정도로 쪼들렸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경제적으로 안정돼 아파트 평수는 22→24→32평으로 커졌고, 자산도 0원에서 7,000만원으로 늘었다. 맨 주먹으로 이룬 값진 성과다. 안씨는 "인생 대박 맞을 일은 없지만 차근차근 좀더 나은 인생 목표를 향해 올라가는 기분"이라며 "하지만 요즘 공무원사회 내부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어 조만간 '철밥통'이 깨지지 않겠느냐"고 걱정했다.
지뢰밭 위를 걷는 '대기업 과장'
박씨는 최근 퇴직한 직장 선배의 동업제의를 받고 사표 제출을 심각히 고민 중이다. 언제 잘릴지 몰라 안절부절 할 바엔, 위험 부담은 있어도 목돈을 만질 수 있는 개인사업이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사실 이런 고민은 과장으로 승진한 뒤부터 계속 됐다. 박씨 회사는 과장직급부터 성과급제를 적용한다. 실적이 나쁘면 부하직원보다 낮은 연봉을 감수해야 한다. 물론 정년도 보장되지 않는다. 이렇다 보니 얼마 전에는 대리들이 아예 승진시험을 보지 않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직장 상사들은 "오후 5시 퇴근=산업쓰레기, 10시 퇴근=산업역군, 10시 이후 퇴근=산업전사"라는 얘기를 서슴지 않는다. 그렇다고 월급이 많은 것도 아니다. 박씨의 연봉은 각종 수당 등을 더해 4,200만원 수준으로, 같은 또래 7급 공무원에 비해 20% 가량 많다.
하지만 노후 준비는 꿈도 꿀 수 없다. 국민연금을 제외하곤 한 달에 10만원씩 붓는 연금보험이 고작이다. 경력 개발할 시간적 여유도, 회사의 지원도 없다. 대학 졸업 때 "공무원시험 준비하라"던 지도교수의 말을 흘려 들은 게 한탄스럽기만 하다.
박씨가 이직을 고민하는 데는 외환위기 때의 악몽 같았던 경험도 작용했다. 직장이 부도위기에 몰리면서 월급은 15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깎였고, 그나마 서너 달씩 밀리기 일쑤였다. 부인이 다니던 회사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통장잔고는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결국 부인은 당시 2살 난 첫째를 직접 키우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퇴직했고, 부인의 퇴직금 800만원은 가뭄의 단비였다.
박씨에게 IMF 충격파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그는 10년 동안 아파트 평수를 늘리지 못한 채 신혼 때와 똑 같은 28평 아파트에서 네 식구가 전세로 살고 있다. 전세금만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올랐을 뿐이다. 그는 회사가 정상궤도에 오르려는 찰나, 부모님 빚(3,000만원)에 덜미를 잡혀 전세금까지 빼야 했다.
이후 4년 동안 해외주재원 생활을 했지만 과거 선배들처럼 큰 돈을 벌진 못했다. 기업들이 외환위기를 겪은 뒤 주재원 수당을 대폭 삭감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업무에 쫓기다 보니 일에 대한 성취감은 온데 간데 없고, 항상 낭떠러지에 매달려 있는 기분"이라며 "기업의 꽃인 임원이 되기 보다는 애들 대학 졸업 때까지 재직하며 학자금 혜택 받는 게 꿈"이라고 털어놓았다.
기획취재팀= 고재학(팀장)ㆍ유병률ㆍ안형영기자 news@hk.co.kr
한국일보 기획취재팀은 고향 친구인 30대 후반의 대기업 과장 박형식(39ㆍ가명)씨와 서울조달청 6급 공무원 안태석(39)씨의 인생항로를 들여다봤다. 안씨는 지방 국립대(경상대)를 나와 1994년 경기도 7급 공채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박씨는 서울의 모 사립대 공대를 졸업 한 뒤 95년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연구원으로 입사했다. 박씨의 부인은 민간기업에 다니다 외환위기 때 퇴직했고, 안씨의 부인은 현재 7급 공무원이다. 이들은 모두 같은 또래의 자녀 2명씩을 두고 있다.
비바람 몰아쳐도 순항하는 '6급 공무원'
안씨는 요즘 7급 공무원시험 경쟁률이 평균 100대1을 웃돈다는 소식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자신이 지원할 때만 해도 학점이 나쁘거나 고시공부에 부담을 갖던 축이나 보던 인기 없는 시험이었기 때문이다. 그도 행정고시를 준비하다 넉넉치 않은 가정형편 때문에 7급으로 선회한 터였다. 94년 경기도 지방직 7급 경쟁률이 17대1이었으니, 10년 새 경쟁률이 5~6배나 뛰어오른 셈이다.
안씨는 이 같은 세태 변화에 대해, "7ㆍ9급 공무원은 아직까지 정년 보장, 경력개발 기회 부여 등 혜택이 많고 노후 걱정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인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의 정년은 57~60세이다. 이제 11살, 8살인 자녀들이 결혼 적령기가 될 때까지 직장을 다닐 수 있다. 만일 60세에 5급으로 퇴직하면 월 220만원의 공무원 연금을 탄다. 그는 현재 서강대 경제대학원에 다니며 경력개발에도 힘을 쏟고 있다. 물론 학비는 전액 국고에서 지원 받는다. 굳이 단점을 꼽자면 연봉이 3,300만원으로 친구인 박씨보다 20% 가량 적은 편이다. 하지만 맞벌이를 하고 있어 부인 연봉을 합치면 연간 가계소득이 6,000만원으로 박씨 가정보다 훨씬 많다.
그가 공무원으로서 느끼는 가장 큰 매력은 외환위기와 같은 외부 충격파에도 끄덕 없는 '고용 안정성'이다. 안씨 부부는 모두 공무원이다 보니 외환위기 당시에도 구조조정의 무풍지대에 머물 수 있었다. 반면 대기업과 금융기관에 들어간 학교 동기들은 사회생활 2~3년차의 초년병이었는데도, 구조조정의 광풍에 휩쓸려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그렇다고 안씨가 처음부터 탄탄대로였던 건 아니다. 96년 결혼할 당시만 해도 대출 1,500만원을 끼고 18평 아파트 전세를 얻을 정도로 쪼들렸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경제적으로 안정돼 아파트 평수는 22→24→32평으로 커졌고, 자산도 0원에서 7,000만원으로 늘었다. 맨 주먹으로 이룬 값진 성과다. 안씨는 "인생 대박 맞을 일은 없지만 차근차근 좀더 나은 인생 목표를 향해 올라가는 기분"이라며 "하지만 요즘 공무원사회 내부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어 조만간 '철밥통'이 깨지지 않겠느냐"고 걱정했다.
지뢰밭 위를 걷는 '대기업 과장'
박씨는 최근 퇴직한 직장 선배의 동업제의를 받고 사표 제출을 심각히 고민 중이다. 언제 잘릴지 몰라 안절부절 할 바엔, 위험 부담은 있어도 목돈을 만질 수 있는 개인사업이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사실 이런 고민은 과장으로 승진한 뒤부터 계속 됐다. 박씨 회사는 과장직급부터 성과급제를 적용한다. 실적이 나쁘면 부하직원보다 낮은 연봉을 감수해야 한다. 물론 정년도 보장되지 않는다. 이렇다 보니 얼마 전에는 대리들이 아예 승진시험을 보지 않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직장 상사들은 "오후 5시 퇴근=산업쓰레기, 10시 퇴근=산업역군, 10시 이후 퇴근=산업전사"라는 얘기를 서슴지 않는다. 그렇다고 월급이 많은 것도 아니다. 박씨의 연봉은 각종 수당 등을 더해 4,200만원 수준으로, 같은 또래 7급 공무원에 비해 20% 가량 많다.
하지만 노후 준비는 꿈도 꿀 수 없다. 국민연금을 제외하곤 한 달에 10만원씩 붓는 연금보험이 고작이다. 경력 개발할 시간적 여유도, 회사의 지원도 없다. 대학 졸업 때 "공무원시험 준비하라"던 지도교수의 말을 흘려 들은 게 한탄스럽기만 하다.
박씨가 이직을 고민하는 데는 외환위기 때의 악몽 같았던 경험도 작용했다. 직장이 부도위기에 몰리면서 월급은 15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깎였고, 그나마 서너 달씩 밀리기 일쑤였다. 부인이 다니던 회사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통장잔고는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결국 부인은 당시 2살 난 첫째를 직접 키우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퇴직했고, 부인의 퇴직금 800만원은 가뭄의 단비였다.
박씨에게 IMF 충격파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그는 10년 동안 아파트 평수를 늘리지 못한 채 신혼 때와 똑 같은 28평 아파트에서 네 식구가 전세로 살고 있다. 전세금만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올랐을 뿐이다. 그는 회사가 정상궤도에 오르려는 찰나, 부모님 빚(3,000만원)에 덜미를 잡혀 전세금까지 빼야 했다.
이후 4년 동안 해외주재원 생활을 했지만 과거 선배들처럼 큰 돈을 벌진 못했다. 기업들이 외환위기를 겪은 뒤 주재원 수당을 대폭 삭감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업무에 쫓기다 보니 일에 대한 성취감은 온데 간데 없고, 항상 낭떠러지에 매달려 있는 기분"이라며 "기업의 꽃인 임원이 되기 보다는 애들 대학 졸업 때까지 재직하며 학자금 혜택 받는 게 꿈"이라고 털어놓았다.
기획취재팀= 고재학(팀장)ㆍ유병률ㆍ안형영기자 new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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